[전문기자 칼럼] 명품제국의 DNA '아르티장'
프랑스 파리 외곽에 있는 에르메스 팡탕아틀리에. 핸드백을 제작하는 곳이다. 지난달 하순 찾은 이 아틀리에 1층에는 회사 상징인 목마(木馬)가 있고 방마다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가죽 핸드백을 꿰매고 있었다.

1837년 문을 연 에르메스는 원래 마구(馬具)부터 제작하기 시작했다. 독일 크레펠드 출신인 창업자 티에리 에르메스는 걸어서 파리에 도착한 뒤 마구 제작 장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 뒤 핸드백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이 회사 핸드백은 값도 비싸지만 돈이 있다고 바로 살 수도 없다. 몇몇 제품은 주문 후 1년 정도 기다려야 한다. ‘규모의 경제’가 현대 경영의 바이블이 된 요즘에도 에르메스는 이를 거부한다. 왜 규모를 대폭 키우지 않고 부자들의 애를 태우는 것일까.

품질과 창의성이 명품의 생명

기욤 드 센 에르메스 부사장은 “우리도 매출을 많이 올리고 싶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품질”이라고 말했다. 창업자 후손인 그는 “장인 한 명이 핸드백 한 개를 생산하는 데 평균 25시간이 걸린다”며 “한 명이 1주일에 두 개도 못 만드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장인은 이 회사의 꽃이다. 장인 한 명이 처음부터 마지막 공정까지 책임진다.

이 회사의 팡탕아틀리에에만 300명의 가죽 장인들이 일하고 있다. 하나라도 더 제작하기 위해 완제품 생산에 비(非)숙련공을 투입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프랑스 명품 기업의 공통점은 품질과 디자인 창의성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120년 역사를 지닌 파리의 조명업체 들릴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명품 업체 모임인 ‘코미테 콜베르’ 회원사인 들릴은 종업원이 20명에 불과한 중소기업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부호들이 직접 찾아와 주문할 정도로 명성이 높다. 이 회사의 장 미셀 사장은 “이제까지 같은 디자인의 조명은 하나도 없었다”며 “창조적인 디자인이 우리의 생명”이라고 말했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조제핀 등 역대 왕후에게 보석을 납품한 500년 역사의 멜르리오디멜레도 마찬가지다.

장인 존중 문화부터 만들어야

명품 기업의 기술과 창의성은 장인의 손끝에서 탄생한다. 장인을 뜻하는 ‘아르티장(artisan)’은 장관보다 존경을 받는다. 독일의 ‘마이스터(Meister)’와 비슷하다. 특히 장인 중의 장인인 ‘메트르 아르티장(maitre artisan)’에 대해 프랑스인들은 외경심을 가질 정도다. 장인을 존중하는 문화가 명품 기업을 낳고 장수 기업을 만든다.

어릴 적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뒤 고아원에서 바느질을 배워 마침내 패션 여왕으로 등극한 코코 샤넬은 자신이 예술가나 천재로 불리는 것을 싫어했다. 그가 유일하게 원했던 호칭은 ‘장인’이었다.

상당수 중소기업이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프랑스와 독일의 명품 기업은 국내 기업이 나아갈 길을 보여준다. 중국의 추격과 추월로 가격 경쟁에 의존하던 시대는 끝났다. 명품으로 승부하기 위한 기업과 국가 차원의 로드맵이 필요하다. 실업계 중심의 교육제도 개편과 장인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장인 존중 문화다. 나이 많은 기능인력과 장인을 여전히 ‘쟁이’ 취급하거나 불황 때 ‘구조조정 1순위’로 여기는 문화에서 명품 탄생을 기다리는 것은 황하가 맑아지길 기대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