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누리예산 갈등 총선서 심판하자
선거만 많으면 민주적인가. 공약 남발은 무제한의 자유권인가. 법을 많이만 만들면 성실한 국회의원일까. 대중민주주의가 붕어빵처럼 증식돼온 이면에는 이런 엉터리 민주주의 이론이 적지 않다. 선거와 관련한 주의, 주장들이 대개 포퓰리즘에서 시작해 표계산으로 원점회귀하게 마련이어서, 실은 공론(空論)인 공론(公論)들이다. 교육감까지 선거로 뽑게 된 것도 ‘선거는 선(善)’이라는 공론(空論) 혹은 오해 탓이었다. 근본 원인은 다 정치과잉으로 귀결될 것이다.

누리예산 편성을 둘러싼 논란도 실은 돈 부족 때문이 아니다. 이런 소모적인 갈등 또한 근본 요인은 정치과잉에 닿는다. 곳곳에서 선출권력을 배출해 놓으니 이들이 투쟁과 독선의 갈등 증폭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 과잉 정치가 통제불능의 권력을 양산해냈고, 지방 권력들까지 법의 이름으로 정치과잉을 재촉한다. 퇴행 정치의 악순환이다.

교육감직선제 폐지공약 내놔라

정치논리를 배제하자는 구호가 넘쳐온 교육 쪽에 얼치기 이상주의자 같은 3류 정치꾼이 몰린 현실은 분명 연구거리다. 교육감 선거가 대표적이다. 시·도와 그 의회 사이에도 온통 정치로 넘치는데 교육감까지 선거직이 되면서 저질 정치를 덧보태온 것이다. 청년배당입네 하며 엉뚱한 돈은 잘도 지출하는 와중에 누리예산이 어느날 정쟁터가 된 것은 저급한 정치가 범람한 결과다. 정치과잉은 정치 환멸을 부채질하고 우중정치를 가속화할 것이다. 과잉정치의 거품을 빼야 한다.

두 달 전 교육감 선거에 대한 합헌 결정이 있었지만 직선제가 최선이라는 의미는 물론 아니다. 직선도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당연히 교육감 직선제를 택해야만 한다는 취지는 더더욱 아니다. 사회적 합의로 적절한 절차에 따라 직선제를 대신할 제도를 찾는다면 누리예산 갈등 같은 논란을 막는 근본대책이 될 것이다.

사실 이미 제시된 해법이 있다. 13개월 전의 ‘지방자치발전 종합계획’에 다 들어 있다. 대통령 직속의 지방자치발전위원회 발표 안이니 정부 방침이라 해도 된다. 당시 방안 중 세 가지가 특히 중요하다. 그대로만 되면 우리 정치와 자치제도의 발전에도 신기원을 세울 수 있는 방안이다. 4월 총선에서 각 당이 공약으로 입장을 밝히라고 유권자들이 촉구할 만한 것들이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정치과잉 초래

그 첫째가 ‘교육감 선출 방식의 변경’이다. 시장·도지사와 의회의 싸움이 일상화한 판에 교육감까지 자기 정치하는 시스템은 더 이상 안 된다는 게 이번 누리예산 파동의 교훈이다. 러닝메이트제가 좋겠지만, 단체장의 지명도 해볼 만하다. 당연히 시·도 예산과 교육청 예산은 단일화돼야 한다. 실은 이게 더 중요하다. ‘신성한 교육의 예산…’하는 틀에 박힌 반대 주장은 정말로 지겹다. 신성한 게 교육뿐이랴. 둘째가 기초단체장과 시·군·구 의회의 정당공천제 폐지였다. 국회의원의 정치적 하청업자를 양산하는 퇴행적 정치 도매업을 청산할 첩경이다. 셋째는 특별·광역시의 구의회를 없애는 방안이었다.

세 가지 개혁안은 원래 2018년까지 마무리한다는 일정이 제시됐다. 하지만 경제와 안보 이슈로 인해 정부 안에서도 우선 순위가 밀리고 있다. 국회가 스스로 나설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이번 총선이 호기다. 이 문제에 대한 각 정당의 입장 천명을 촉구해야 한다. 판단과 심판은 유권자들 몫이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