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엊그제 대(對)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식물국회’를 거듭 질타했다. 경제활성화법안, 노동개혁법안 등을 뭉개고만 있는 국회를 비판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특히 국회선진화법에 대해 “대화와 타협으로 원활하게 국회를 운영하기 위한 취지로 처리됐는데, 정쟁을 가중시키고 국회 입법 기능을 마비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이 나서서 국회를 심판해달라는 호소도 했다. 국회 수준이 낮다는 극적인 언어까지 동원됐다.

옳은 지적이다. 국회가 달라지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더는 전진할 수 없다. 19대 국회를 사상 최악의 국회로 만든 주범은 국회선진화법이다. 쟁점법안의 의결정족수에 재적의원 5분의 3이라는 중다수결을 도입한 탓에, 소수 정당이 동의하지 않으면 어떤 법안도 처리 못하는 것이다. 중요 법안마다 핵심이 다 빠지고, 시장과 기업을 파괴하는 ‘증오법안’ 끼워넣기가 횡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물국회가 식물국회가 됐다고 하지만 정확히는 불임국회다.

새누리당이 얼마 전 국회선진화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에 재적의원 과반수가 본회의 부의를 요구하는 경우를 추가한 내용이다. 김무성 대표는 19대 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법을 제정한 것은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이었다. 2012년 4월 제19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패배가 예상되자, 다수 야당 독주를 막을 심산에 문제 법안을 주도해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총선에서 승리했고, 그 결과 제 발등을 찍은 것이다. 기회주의적 처신이 참화를 자초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은 여태 대국민 사과 한마디 없다.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대통령은 식물국회를 질타하지만, 당시 원내대표였던 황우여 의원부터가 잘못했다는 말 한마디 없다. 국회를 탓하기 전에 새누리당이 먼저 참회해야 한다. 황우여 의원부터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국민도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진정성을 믿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