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북원칙 확립, 위험을 두려워해선 안돼
을미(乙未)년 말미에 북에서 들려온 가장 비중 있는 뉴스는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사망 소식이었다.

김양건은 10년간 북한 노동당 국제부장을 지냈고 2007년 이후 통일전선부장 겸 노동당 대남비서로 대남정책을 총괄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주요 역할을 했고,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시에는 조문특사로 방문해 이명박 정부와 남북정상회담을 타진하는 등 남북협상의 중심에 있었던 최고위 실세 중 한 사람이었다.

이런 김양건의 사망 소식에 국내에서는 온건파의 퇴장으로 인한 남북관계 경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병신(丙申)년 벽두에 발표된 김정은 제1비서의 신년사는 이런 우려를 기대로 바꾸었다.

김정은 제1비서는 신년사에서 정치·군사에 대한 언급을 줄이고 경제·사회 문제들을 강조했다. 핵능력을 과시하는 내용은 없었고 ‘병진정책’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 대신 강조된 것은 ‘인민생활 향상’, ‘경제강국’, ‘사회주의 문명국 건설’ 등이었다. 남쪽을 향해서는 “화해와 단합을 희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마주앉겠다”는 말로 대화에 대한 관심을 밝혔다.

신년사만 놓고 본다면 올해에는 김정은 정권이 내부적으로 주민 삶의 질에 신경을 쓰면서 남북 대화에도 더 전향적인 자세로 나올 것으로 보였다. 대외적으로도 북핵 및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을 의식해 이미지 개선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지난 6일 북이 강행한 제4차 핵실험은 이런 기대를 일거에 소멸시켰다.

모든 정황을 종합할 때 핵실험에 사용한 폭탄은 ‘증폭핵분열탄’일 가능성이 높다. 수소폭탄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수폭이 아니더라도 북한이 수폭에 접근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정황은 이미 많았다. UN 안전보장이사회가 열리고 미국과 중국이 분노를 표시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새로운 안보리 결의안 채택을 위해 핵외교에 나선 가운데 국방부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고 동맹차원에서의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부산하다.

그렇다면 일단 남북관계의 냉각은 불가피할 것 같다. 당분간 정상회담 이야기도 나오기 어렵게 됐다. 김정은 제1비서가 오는 5월 제7차 당대회에서 전향적인 제안을 하더라도 ‘울림’을 수반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 확대, 개성공단 3통(통행·통관·통신) 개선,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위한 남북대화도 무기한 연기될 것이며, 그 이전에 남북관계가 더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남북관계 개선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더욱 엄중해진 북핵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군사적·외교적 대응에 집중하는 것이 국가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외교적 대응의 핵심은 ‘북핵 반대’를 표방하면서도 뒤로는 북한정권의 생존을 위한 ‘숨통’을 열어준 중국으로 하여금 원유·식량공급 중단 및 민간교류 차단이라는 실질적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것이지만 쉽지 않은 과제다. 군사적으로는 독자적 차원과 동맹 차원에서 북핵 억제전략을 재정비하는 것이 시급하다.

대북방송 재개는 이런 과제들을 실행해나가기 위한 시작일 뿐이다. 북한이 또다시 ‘조준 타격’을 위협하고 나서면 긴장이 높아질 것이며, 실제 군사충돌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북한을 관리하는 데 필요한 대북원칙의 확립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감수해야 할 위험이다. 국민적 단결은 이런 시도가 성공을 거두기 위한 기본조건이다. 정부와 군 그리고 국민이 한 덩어리가 되는 것이 북한의 추가 도발을 예방하는 최상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김태우 < 건양대 교수·전 통일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