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국회선진화법 개정, 유권자가 나설 때다
새누리당이 11일 국회법 개정 법안을 제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흔히 ‘국회선진화법’으로 불리는 현행 국회법은 제18대 국회 막판에 통과·발효된 것으로 몸싸움과 단상 점거 등 국회 내 폭력 사태를 방지한다는 취지는 좋았다. 선진화법이라는 말도 그래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법은 결과적으로 국회를 사실상의 식물 상태로 전락시킨 악법 중의 악법으로 드러났다.

2014년 박근혜 정부의 정상적 출범을 한 달 이상 지체시켜 국정 운영 공백이 빚어진 데도, 각종 민생 및 경제활성화법안은 물론 2014년 예산안 처리가 지연된 데도 이 선진화법이 작용했다. 2015년 정부가 4대 개혁과제와 연결해 추진한 많은 민생법안들이 통과되지 못한 것도 이 법 탓이 크다. 제19대 국회에서 법률 가결 비율이 제18대 국회에 비해 낮아진 게 이 법의 영향이란 분석도 있다. 이렇게 보면 국회를 선진화하기는커녕 무용화한 법으로 당연히 개정돼야 마땅하다.

국회선진화법은 폭력 국회 방지 및 처벌 외에도 안건 조정, 직권 상정 제한 및 안건 신속 처리, 그리고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조항 때문에 국회의 의사결정이 재석 의원 과반수 동의에서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 동의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의 반대 동의를 얻은 소수당은 이보다 다수지만 재적 의원 5분의 3에는 미치지 못하는 찬성표를 지닌 다수당을 저지할 수 있다. 또 신속한 처리가 요구되는 사안에 대해 합법적으로 의사 진행을 지연시킬 수도 있다.

그 결과 의석의 3분의 1 이상을 확보한 소수당은 동의의 대가로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맞교환 형태로 요구할 수 있게 됐다. 다수당이 이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국회는 옴짝달싹할 수 없는 ‘식물국회’가 될 수밖에 없다.

이전의 국회법에서는 첨예한 의견 대립이 있으면 국회의장의 직권 상정이라는 우회 장치가 있었다. 하지만 의장의 직권 상정은 국회선진화법에서는 봉쇄돼 있다. 물론 의장의 직권 상정이 몸싸움의 계기가 된 경우가 허다했지만, 식물국회보다는 ‘동물국회’가 오히려 나았다는 이야기가 공연한 것만은 아니다.

이처럼 국회선진화법은 소수의 합법적 횡포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연히 개정돼야 한다. 하지만 국회선진화법 개정 또한 현행 법의 제약 아래서 이뤄져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할까. 새누리당이 이를 해낼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봐야 한다. 새누리당은 과거에도 국회선진화법 개정을 당론으로 채택한 바 있지만 지금껏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지금이라고 달라질 이유가 없다.

첫째, 이미 꼬리로 몸통을 흔들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를 손에 쥔 야당이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내부 분열로 제20대 총선에서도 다수당이 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현 상황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둘째, 새누리당은 국회선진화법에 관해 원죄가 있기 때문에 개정을 밀어붙일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기 어렵다. 이 법의 통과를 주도한 것은 총선에서 소수당 전락을 우려한 새누리당의 비상대책위원회와 당 지도부였다. 지금 상황이 달라졌다고 해서 입장을 바꿔 재개정을 강행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새누리당이 하기 어렵다면 유권자가 나서야 한다. 첫째, 여야 당직자들과 의원들을 접촉해 석 달밖에 남지 않은 선거를 빌미로 국회법 개정을 압박해야 한다. 이를 통해 새누리당에는 힘을 실어주고 야당으로부터는 개정 반대의 명분을 박탈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위헌 소송도 제기해야 한다. 헌법정치경제학의 대가로 1986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뷰캐넌은 국회법과 같은 의사결정의 ‘규칙’을 정할 때는 보통 안건과는 달리 절대다수나 만장일치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2012년 당시 국회선진화법은 재적 의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127명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재석 의원의 단순 다수결로 재적 의원 초(超)다수의 찬성이 필요하도록 의사결정 규칙을 변경한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경제학 yjlee@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