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벤처창업과 기회비용
맥킨지엔 독특한 제도가 있다. 대학 학부 졸업 후 입사하는 컨설턴트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잠정 퇴사해야 한다. “외부 경험을 쌓아 성장하고 맥킨지로 돌아오라”는 의도다. 든든한 줄을 차고 과감히 번지점프를 해 볼 수 있으니 매력적인 제안이다.

회사를 나간 이들의 선택은 시대에 따라 다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해외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거나 사모펀드, 국내외 대기업으로 갔다. 그런데 요즘은 벤처 창업이 많다. 여기저기서 기회가 보이고, 창업 비용이 전보다 줄어 진입 문턱이 낮아진 덕분이다. 생계형이 아니라 인재들이 꿈을 좇기 위한 창업인 셈이다.

필자도 16년 전 맥킨지를 떠나 지인들과 함께 전자상거래 회사를 창업했다. 누구나 그렇듯 시작할 땐 대박을 꿈꿨다. 투자도 유치하고, 사람도 뽑고, 상품도 구하려고 뛰어다녔다. 그런데 일이 영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았다. 투자금은 훨훨 타 버렸고, 장밋빛 미래를 제시하며 스카우트했던 임직원들은 해고했다. 사업은 2년을 채 못 넘기고 실패했다. “괜한 일 벌여 많은 사람에게 손해만 끼친 것 같다”고 자책도 많이 했다.

사업을 접고 나니 백수가 됐다. 통장 잔액 역시 바닥이 났다. 뭘 할지 막막했다. “내가 왜 이 고생을 하지”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벤처 창업의 길을 계속 걷는 것은 당시의 필자에게 큰 기회비용으로 다가왔다. 오랜 고민 끝에 맥킨지로 돌아왔다. 비록 성공하지 못했지만, 맨땅에서 일을 만들고 책임져 본 경험은 스스로를 지금의 모습으로 일구는 데 도움이 됐다.

필자는 실패를 거듭하며 벤처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그 길이 정말 어렵고 고통스럽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특히 훌륭한 ‘스펙’과 다양한 진로선택 가능성을 가지고도 마치 기회비용이 없는 것처럼 돌진하는 사람이야말로 무서운 사업가다. 그들은 대박의 꿈을 이룰 자격이 있다.

신년이 되면서 창조경제도 4년차에 접어들었다. 벤처가 활성화되고 창조경제가 뿌리를 내리려면, 실패에 대한 재도전을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우린 스티브 잡스와 마윈에게 열광하고 그들을 배우려 한다. 그러나 ‘실패한 스티브 잡스와 마윈들’에겐 관심이 없다. 그들이 실패를 딛고 일어날 수 있도록, 또 기회비용에 타협하지 않도록 지원하는 게 창조경제가 성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다.

최원식 < 맥킨지 서울사무소 대표 se_media@mckinse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