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현실로 다가온 반도체 인력 유출
“중국 반도체 업체에 취업시켜 준다는 헤드헌팅 회사의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반도체산업을 육성하고 있는 중국이 한국 반도체 인력들에게 연봉의 최대 9배를 제시하며 스카우트 제안을 하고 있다는 본지 기사(12월4일자 A1, 5면 참조)를 본 한 독자가 기자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이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싶다”는 절절한 호소도 담겼다.

해당 기사는 댓글 수천개가 달릴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한국 반도체 기술 유출을 걱정하는 내용이 아니었다. 대부분 “돈 많이 주면 왜 안 가냐. 나도 가겠다”는 식이었다. 인력 유출이 ‘현실’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반도체산업 특성상 핵심 인력 몇 명만 중국에 넘어가도 한국은 수십년간 쌓아온 노하우를 모두 빼앗길 수 있다. 하지만 인력 유출을 막기는 쉽지 않다는 게 기업들의 하소연이다. 산업기술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있긴 하지만, 이직자들은 법망을 교묘히 피한다. 중국 반도체기업의 자회사인 투자회사에 취직하는 식으로 말이다.

관계자들은 이직하는 사람도 피해를 보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중국 업체가 “기존 연봉의 세 배를 5년간 보장해주겠다”고 모셔간 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 만에 하나 원래 몸담고 있던 기업과의 소송에서 지면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 한다. 결국 우리 기업과 근로자 모두가 피해를 보는 동안 중국 기업은 기술을 챙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융통성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 법만 믿고 있을 게 아니라 퇴직자와 이직자 현황을 면밀히 파악하고 이들이 국내에서 재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자고 입을 모은다. 학교, 연구소, 중소기업 등 대기업 반도체 기술자의 역량을 필요로 하는 곳은 많다. 기업들이 눈앞의 이익만 보고 이직을 단행했다가 피해를 본 사례 등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반도체 대기업에서만 회사를 떠난 인재가 1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미 고위 임원 몇 명이 중국이나 대만으로 넘어갔다는 얘기도 들린다.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남윤선 산업부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