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 챔프리그(1부) 우승팀인 서울CMS의 김주현 감독(앞줄 왼쪽 세 번째)과 선수들이 연습장인 경기 남양주 별내야구장에 모여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2015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 챔프리그(1부) 우승팀인 서울CMS의 김주현 감독(앞줄 왼쪽 세 번째)과 선수들이 연습장인 경기 남양주 별내야구장에 모여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아, 아까비! 아까비! 조금만 더 옆으로 갔으면 쳤을 텐데….”

“수고하십니다! 고생하십니다! 박수!”

서 있기만 해도 이가 딱딱 떨릴 정도로 쌀쌀해진 초겨울 날씨, 경기 남양주 별내야구장에 있는 가건물 안에서는 지난달 14일 ‘2015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 챔프리그(1부) 결승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국내 여자야구팀 서울CMS 선수들이 수비 연습에 한창이었다. 하필 난로가 고장나는 바람에 실내는 매우 추웠다. 하지만 선수들은 입김이 허옇게 서렸는데도 우렁찬 목소리로 서로를 응원하며 한기를 날려 보냈다.

연습 중간에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 선수들이 모였다. 사진기자의 카메라 앞에 서자 선수들은 연습 때는 몰랐던 여성 특유의 발랄하고 활기찬 기운을 거침없이 뿜어냈다. “어머, 여기 서면 얼굴 커 보이잖아”, “기자님, 꼭 뽀샵해 주실 거죠” 등 애교 섞인 ‘예쁜 부탁들’이 쏟아졌다.

사진 촬영이 끝나고 연습이 재개됐다. 야구공과 글러브, 배트를 잡은 선수들의 눈빛이 다시 ‘야구인’으로 변했다. 묘하고도 힘이 넘치는 아름다움이었다.

인생 달라도 ‘야구 팬心’은 같아

[人사이드 人터뷰] 여중생부터 주부까지 "야구가 미칠 듯 좋아…마음만은 프로죠"
서울CMS에는 현재 김주현 감독(45·사진)을 포함해 총 20명이 선수로 뛰고 있다. 이 가운데 10명이 20대다. 김주현 감독은 “국내 여자야구팀 중에서 평균 연령이 가장 낮다”며 “열여섯 살 중학생부터 대학생, 회사원, 주부 등 다양한 사람이 뭉쳤다”고 설명했다.

연령대만큼이나 선수들이 야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다 달랐다. 아직 여자야구에 정식 프로리그가 없다 보니 직업 또한 각양각색이다. “야구가 미치도록 좋다”는 마음 하나로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유니폼을 입고 모인다.

주장인 강은비 선수(27·등번호 7번)는 야구를 시작하기 전에는 운동과 인연이 없었던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야구를 보는 건 아주 좋아했는데 여자도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걸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 알게 됐어요. 야구를 시작한 지는 올해로 3년 반 됐습니다. 주장을 맡은 이유는 팀에서 나이대가 딱 중간이라 의견을 조율하기 좋아서 뽑힌 거고요. 요즘은 야구한다 하면 사회인 야구하는 남자 분들이 엄청 반가워하세요.”

강 선수는 “야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들어오면 기본기부터 하나씩 배우는데 이 과정이 지겨워 중도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며 “기본기를 다지지 않으면 100% 다치기 때문에 초반을 잘 버텨야 즐길 수 있다”고 전했다. “이번 LG배 우승은 창단 후 처음 우승한 거라 정말 기뻤어요. ‘이 맛에 우승하려고 기를 쓰는구나’ 하고 느꼈죠. 주말에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자랑스러워요.”

올해 LG배 여자야구대회 챔프리그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김해리 선수(23·등번호 20번)는 지난해 1월 서울CMS에 입단했다. 경기대 스포츠경영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김 선수는 “솔직히 이번에 MVP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며 “많이 부끄럽지만 ‘더 잘하라’는 뜻으로 받은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아빠 따라 TV 야구중계 프로그램을 많이 보면서 야구를 좋아하게 됐어요. 대학에 와선 학교 야구팀 매니저를 했는데,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한 오빠가 ‘너 야구 한 번 해보지 않겠느냐’고 권해서 2013년부터 시작했습니다.”

김 선수는 처음엔 부모에게 자신이 야구를 한다는 사실을 숨겼다.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여자가 야구하면 ‘와, 너 야구하냐’고 놀라면서 묻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그것 때문에 야구를 반대한 것은 아니었어요. 제가 혹시나 경기하다 다칠까봐 걱정돼서죠. 야구를 시작하고 1년 정도 지난 뒤에 더 이상 숨기기 어려워 말씀드렸어요. 이젠 ‘몸만 성하면 된다’고 하세요.”

2013년부터 여자야구 국가대표로 뛰고 있는 기남희 선수(25·등번호 17번)는 원래 소프트볼 선수였다. 지금은 평일엔 콜센터 직원으로 일하고, 주말엔 야구선수로 살고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을 잘해서 육상을 비롯해 여러 종목 선생님들이 데려가려고 했어요. 중학교 때부터 소프트볼을 시작했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 사정이 생겨 그만뒀습니다. 마음 한구석에 늘 아쉬움이 있었는데 아는 언니 중에 야구선수가 있었어요. 처음엔 ‘에이, 여자가 무슨 야구를 해’ 하고 거절했다가 호기심이 생겨서 2011년부터 시작했습니다. 제가 승부욕이 엄청 강하거든요. 이젠 취미로 하지 않아요. 프로 선수가 아니라고 해도 전 늘 프로의 마음으로 최고가 되고 싶습니다.”

기 선수는 “직업상 감정적 스트레스가 많은 편인데 주말에 야구 연습을 하면 평일에 쌓인 울화가 전부 날아가는 느낌”이라며 “내년에는 우리 팀이 좀 더 좋은 실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국민생활체육 전국사격연합회에 근무 중인 한예지 선수(28·등번호 21번)는 팀내에선 비교적 나이가 많은 편이지만 활달한 성격으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한다. 한 선수는 사격을 하다가 야구로 전향했다. “중학교에서 체육 선생님이 사격을 권해서 사격을 시작했어요. 성신여대 체육학과를 졸업했고요. 지금 다니는 직장도 사격과 관련 있는 곳이죠. 사실 경기 자체로만 보면 사격이랑 야구가 별 연관 없는 것은 맞아요. 하지만 둘 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한 선수는 “가족 모두 야구팬이라 자연스럽게 야구광이 됐다”며 “집에서 드라마 보듯 야구경기를 보는 게 일상이었다”고 말했다. “2011년부터 야구를 시작했어요. 다른 팀에 있다가 2년 전 서울CMS로 옮겼어요. 아무래도 훈련 방식이 좀 더 체계적이란 느낌이 있었습니다. 체대 출신이라 ‘내가 운동 좀 하지’ 하는 자만심으로 왔다가 망신 많이 당했어요. 연습하고 또 연습해야죠.”

“여자 프로야구 꼭 탄생하길”

서울CMS의 울타리 안에 선수들이 모이기까지는 김주현 감독의 헌신적 노력이 있었다. 김 감독은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원년 때 부모를 졸라 프로야구 어린이회원이 됐을 정도로 열성적인 야구팬이었다. 동네에서도 남자 아이들 틈에 끼어 야구를 하며 놀았다.

그의 첫 스포츠 경력은 야구가 아닌 카레이싱에서 시작됐다. 1995년 한국모터챔피언십시리즈 현대전에서 남성 레이서를 제치고 종합우승을 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카레이싱은 운전면허를 따면서 관심이 생겨 시작했어요. 운이 좋았죠. 우승 네 번 하고 2000년에 그만뒀습니다. 그때도 참 즐거운 시절이었죠.”

야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05년부터다. 국내 최초 여자야구단인 ‘비밀리에’에 입단한 뒤 발군의 실력을 나타내며 여자야구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그러나 “돈 걱정, 시설 걱정 없이 야구를 하고 싶다”는 소원을 풀고 싶었다. 기업 후원을 받기 위해 백방으로 뛰다가 중소 제약회사 CMS(센트럴메디컬서비스) 대표이자 김 감독의 형부인 김부근 씨의 도움으로 CMS 후원을 받게 됐다. 그렇게 2010년 서울CMS가 창단됐다. 국내 최초로 기업 후원을 받는 팀이다. 입단 조건 중 최우선은 야구에 대한 열정이다. 그 다음은 다른 선수들과 융화할 수 있는 인성이다. “실력은 연습으로 따라갈 수 있지만 열정과 인성은 그럴 수 없기 때문”이라고 김 감독은 전했다.

서울CMS의 팀 좌우명은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잊어라’다. 김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아무 장벽 없이 즐길 수 있는 야구를 하고 싶어요. 앞으로 여자야구 실업팀이 창단되고, 여자 프로야구 리그가 탄생해 여자들도 어린 시절부터 당당히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꿈꿉니다.”

한국 여자야구의 세계

42개 팀에 선수 900여명 활동
전국대회 4개…LG배 가장 커


한국 여자야구는 프로야구와 아마추어 사회인 야구 사이의 애매한 위치에 놓여 있다. 아직 야구를 생업으로 할 수 있는 실업팀은 없지만 여자야구연맹과 정규리그, 국가대표팀은 있다.

한국여자야구연맹은 2007년 출범했다. 당시 16개팀, 선수 200여명이었지만 이젠 42개팀, 약 900명의 선수로 늘었다. 이 가운데 가장 오래된 팀은 2004년 창단한 ‘비밀리에’다. 야구에 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어도 입단이 가능하고, 단원 모집과 심사는 각 팀에서 자체적으로 한다. 다만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선수 연령이 만 14세 이상이기 때문에 만 14세 이상 여성을 자격 조건으로 내거는 팀이 많다.

전국 단위 주요 대회는 CMS기와 익산시장기, KBO배와 LG배 등 4개가 있다. 이 중 올해 4회째를 맞은 LG배는 LG전자와 한국여자야구연맹이 주최한다. 규모가 가장 크다. 2008년 여자야구 국가대표팀이 꾸려졌으며, 그해 세계 여자야구월드컵에 출전했다. 세계 여자야구월드컵은 2004년부터 2년에 한 번씩 개최된다. 내년엔 부산 기장군에서 열린다.

여성 야구팬이 늘어나고, 어릴 때부터 야구를 접하는 경우도 늘면서 여자야구에 대한 편견 자체는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아직 야구 자체를 생업으로 삼을 수 없어 국내에서 여성이 직업 야구선수로 성장하는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여자야구계 관계자는 “배구와 축구, 격투기 등 각종 종목도 처음에 여자 프로리그가 생길 때까지 여러 진통을 겪었다”며 “앞으로 여자 프로야구 리그가 생기리라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