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인맥 없인 안된다는 한국 핀테크
“30분 단위로 투자자들과 미팅이 잡혀 있어요. 얼굴 보자는 곳이 많아서 정신이 없네요.”

지난 12일 홍콩 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씨티모바일챌린지(CMC)’ 행사장에서 만난 국내 핀테크(금융+기술)기업 B대표의 얼굴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CMC는 미국 씨티그룹이 매년 세계 유망 핀테크기업들의 기술 사업화를 돕기 위해 여는 행사다. 올해는 국내 기업 3곳 등 총 17개 기업이 초대받았다. 현장에는 새로운 핀테크 기술을 찾는 AIA, 마스타카드 등 글로벌 금융회사들과 벤처캐피털 관계자들이 가득했다. 즉석 투자 미팅도 열렸다. B대표도 이날 하루 10여명의 글로벌 벤처캐피털 관계자를 만나 핀테크 기술을 설명하느라 정신없었다.

CMC 현장에 대한 평가는 한국 핀테크산업에 대한 다른 국내 기업들의 평가와 사뭇 달랐다. 국내에서도 올 들어 핀테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청와대와 금융당국이 핀테크 육성을 위한 정책도 내놨다.

하지만 기업들의 평가는 인색하다. 한 국내 스타트업 대표는 “한국에서 핀테크기업의 성공 요건은 기술이 아니라 누구를 아느냐에 달려 있다”고 꼬집었다. 핀테크기업이 기술을 상용화하려면 은행 등 기존 금융회사들의 자금 지원 등 협력이 필수적인데, 국내 은행 문턱이 여전히 높다는 얘기였다. “한국에서와 달리 이곳에선 기술력만 있으면 된다. 다른 건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CMC에 대한 평가와 정반대다.

젊고 똑똑한 창업자들이 처음엔 기술로 성공하겠다는 생각으로 연구개발(R&D)에 매달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학교나 고향 선배들에게 연락한다는 업체대표도 있었다. 또 다른 핀테크기업 P대표도 “‘이메일 몇 통 보내고 몇 번 찾아와 프레젠테이션 한 걸로 도움을 받겠다는 생각은 하지 마라’는 은행 직원도 있다”고 귀띔했다.

올해 국내 은행들은 ‘핀테크 도우미’를 경쟁적으로 자처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게 국내 업체들의 하소연이다. 핀테크기업을 동반자가 아닌 기술력을 지닌 을(乙)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는 얘기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