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책금융 GDP 대비 7.3%…일본 다음 높아
신보 10년 이상 보증 3741개사…좀비기업 양산 비판
창업·벤처 지원기회 줄여 경제전체 활력 상실 우려

"정책금융의 애초 목적은 경제개발이었지만
지금과 같은 저성장 국면에서는 구조조정자 역할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한재준 <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 >
[뉴스의 맥] 정책금융 개혁, 소규모 지원은 시장에 맡겨야

화두로 떠오른 정책금융 개편 방향

한 재 준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

한 재 준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

정책금융에 대한 전면적인 개편 목소리가 높다. 정책금융의 중소기업 중복 지원, 좀비기업 양산과 같은 문제점이 거론되고 있다. 정책금융은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한국의 정책금융은 1960~1970년대 경제개발 전략을 위한 산업정책 수단으로 도입됐다. 정부는 중화학공업 분야 등 경제 발전에 중요하다고 판단한 업체에 국책은행을 통해 대규모 융자나 저리 대출을 제공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대기업들이 제2금융권 업체를 인수하고 주식 발행과 같은 자본시장이 발달하면서 이런 융자 수요는 줄어들었다. 대신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새로운 정책금융 수요가 등장했다.

중소기업 지원, 신성장동력 발굴 및 구조조정, 시장 안전판 기능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정책금융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선진국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도 후진국보다 더 많은 정책금융기관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독일과 스위스는 국책금융기관이 각각 44개, 32개에 달한다고 한다.

정책금융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 규모가 너무 커졌다는 것이다. 정책금융기관으로는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기업은행, 중소기업진흥공단,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주택금융공사 등 9개 기관이 있다. 이 외에도 정부 부처에 산재한 각종 기금, 지방자치단체, 지역신용보증재단도 정책금융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 9개 기관의 자산 규모만 약 390조원(2009년 말)으로 예금은행 총자산의 24%에 이른다. 한국의 정책금융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7.3%로 일본(12.1%)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둘째, 정책금융기관 대다수가 중소기업과 수출기업 지원에 집중하다 보니 같은 업체에 대한 중복 지원, 민간 금융회사와의 시장 마찰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방만경영 문제도 심각

셋째, 최근 불거진 방만경영 문제다. 대우조선해양 관리 부실로 도마에 오른 산업은행은 자회사 형태 관리기업(268개) 중 부실기업 수가 114개, 부실여신이 3조원을 넘어섰다. 수출입은행은 STX, 성동조선 지원 등으로 부실여신이 2조원을 넘어서면서 자기자본비율이 10%대로 추락했다. 모뉴엘 사태를 겪은 무역보험공사의 미회수 채권 규모는 3조8000억원에 달한다.

넷째, 좀비기업 양산에 대한 의구심이다. 좀비기업이란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상태가 3년 이상 지속된 한계기업이다. 그런데 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10년 이상 장기보증을 제공받은 중소기업이 3741개, 이들이 제공받은 보증액이 2조4000억원이라고 한다. 이런 장기보증으로 인해 신생 창업벤처기업에 대한 지원 기회가 사라진다는 비판도 있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좀비기업 부도 우려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대출을 연장해주다 보니 정상기업에 대한 대출 기회가 줄어들어 경제 전체의 활력을 상실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정책금융은 태생적으로 정책적 판단과 무관할 수 없다. 그런데 이것이 정치적 개입으로 번지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이 때문에 정책금융을 시장으로 이관하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실현 가능성, 먹튀 논란, 학습비용 문제가 지적된다. 시장이 정책금융을 대체할 정도로 성숙해 있는지, 시장으로 이전하는 게 바람직한 대안인지, 과도기 이전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의구심이다.

구조조정자로서의 역할 부각

정책금융의 애초 목적은 경제개발이었지만 지금과 같은 저성장 국면에서는 구조조정자 역할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최근 좀비기업과 기업 구조조정이 화두로 떠오른 데는 고도성장을 멈추고 저성장 국면으로 진입한 탓도 크다. 이웃나라인 일본과 중국도 같은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일본은 버블 붕괴 이후 지난 20년간 좀비기업과 금융기관 부실 문제를 앓아왔고, 중국 경제도 저성장 국면 진입으로 그간 과잉중복투자한 에너지, 부동산, 철강 및 건설업종에 대한 구조조정이 시작될 전망이다.

그런데 구조조정은 누가 담당하더라도 재산권 침해, 형평성 및 고용 관련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장 기반 구조조정이 언급되지만, 그 실체는 인수합병(M&A), 사모펀드(PEF)에 의한 ‘헐값 매입→구조조정→재매각’이다. 이 과정에서 수익성이 공공성을 앞서는 것은 당연지사다. 반면 정책금융은 ‘공공성’과 ‘먹거리 발굴’이라는 외부성을 고려한다는 점에서 그 필요성을 부인할 수 없다. 그 대신 정치적 개입 우려, 도덕적 해이와 방만경영 같은 대리인 비용, 민간 기능 구축이 골칫거리다.

정책금융기관에 대한 구조조정은 필요하다. 장기간 고인 물은 썩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환부를 도려내는 작업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도깨비 방망이처럼 뚝딱 해치울 사안은 아니다. 또 사공이 많아지면 정책금융의 장점인 신속성과 리더십이 붕괴되고, 배가 산으로 갈 수 있음에도 유념해야 한다. 바람직한 구조조정 방안은 통합적 시각에서 적정한 수준을 산정하고 그 기능의 효율화 및 도덕적 해이 방지책에 대한 고민을 담은 것이어야 한다.

시장 기능 염두에 둔 개편이어야

이와 관련해 다음의 네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여러 기관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대출보증 공급채널을 단순화해야 한다. 평가위원회를 통해 중복 지원과 사각지대 문제를 점검하고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유사 기능을 통폐합할 필요가 있다. 둘째, 정책금융기관을 정치로부터 독립시키고 경영진의 전문성과 역량을 담보해야 한다. 인사위원회, 리스크관리위원회의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언급한 가이드라인을 포함해 자금 지원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사후 부실 발생 시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넷째, 시장 기능 활성화를 궁극적 목표로 삼고 정책금융기관을 재편해야 한다. 정책금융의 존립 근거는 어디까지나 시장 기능 보완이기 때문이다. 큰 건은 정부가 맡더라도 일정 규모 이하는 민간으로 이양할 필요가 있다.

한재준 <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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