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 수출 둔화, 제조업 하강, 세계 경제 불확실성 등 먹구름이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음에도 정작 국내 기업은 위기를 극복하려는 절박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삼성-한화 빅딜’ 이후 국내 산업계의 구조개편은 제자리에 멈춰선 상황이다. 이대로 가면 구조조정 골든타임을 놓칠 것이라는 안팎의 경고가 쏟아지는데도 그렇다. 기업들마저 이대로 살다 죽자는 것인가.

한국경제신문이 단독 입수한 글로벌 구조조정 컨설팅 회사 알릭스파트너스의 ‘기업 부실화 위험지수’ 분석에 따르면 내년 워크아웃 및 법정관리 위험이 있는 국내 상장사만 417개다. 이 중 11%에 달하는 170개는 당장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세 분기 내 도산이 거의 확실시된다는 고위험군에 속한다. 미국(7%), 유럽(4%), 일본(2%)보다 수치가 월등히 높다. 더구나 고위험군의 범위가 자동차, 전자 등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중이다.

그러나 국내 기업은 말로만 비상경영을 외칠 뿐이다. 선제 사업재편은 거의 실종 상태다. 물론 기업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사업재편을 지원하는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안’(일명 원샷법)은 국회에서 언제 처리될지 기약이 없다. 오히려 툭하면 기업인을 증인으로 불러대기 바쁜 정치권이 원망스러울 것이다. 노동 등 4대 구조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는 정부도 못마땅할 것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온통 기업에 부담만 지우는 환경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기업의 흥망은 결국 기업의 책임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기업 CEO들이 이런저런 핑계만 대고 앉아있다는 인상을 풍긴다. 기업 환경과는 별개로 기업 내부에 무사안일, 보신주의가 팽배하거나 깊은 관료주의 때문은 아닌가 의심스럽다. 외부 탓을 한다고 길이 열리는 것도 아니다. 사업 아이템이 안 보인다지만 사업기회가 넘쳐흘렀던 때가 있은 적이 없다. 그게 바로 기업의 존재 이유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빠르고 과감한 사업재편이 승부를 갈랐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