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하는 사례가 잦아지고 규모도 커지고 있다. 한은은 그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산업은행에 약 3조4000억원을 대출키로 결의했다. 산은은 이 돈으로 한은이 발행한 통화안정증권을 더 높은 수익률로 매입, 그 이자 차이로 500억원을 확보해 신용보증기금에 출연할 예정이다. 이번 지원은 2013년 정부와 한은이 마련한 ‘회사채시장 정상화 방안’의 추가 조치라고 한다. 한은은 지난해 3월 3조5000억원의 발권력을 동원한 바 있어 이 조치로만 6조9000억원의 돈을 마술처럼 찍어내게 된다.

올 들어서도 한은은 지난 5월 이른바 안심전환대출을 취급한 주택금융공사의 자본금 확충을 위해 2000억원을 추가 출자했다. 중소기업 지원용 금융중개지원대출도 지난 4월 5조원을 증액해 20조원으로 한도를 늘렸다. 이 추세대로라면 발권력을 동원한 한은의 대출금 규모가 올해 역대 최대를 기록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볼 것이다.

발권력 동원은 국회 승인을 받아야 하는 정부 재정투입과도 다르다. 금통위 의결만으로 찍어낼 수 있다. 이렇게 찍어낸 돈에는 땀도 눈물도 영혼도 없다. 문제는 화폐가치 하락으로 이어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국민 부담이 된다는 점이다. 중앙은행의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는 건 바로 이런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지만 아랑곳없이 감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발권력 동원은 최대한 자제돼야 한다”면서도 “중앙은행 본래의 맨데이트(권한)에 부합하는 경우의 자금지원은 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최근의 조치는 정부가 가계부채 대책 등을 세우면서 국회 승인 없이 재원을 조달할 방편으로 한은에 압력을 가한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세금으로 할 일을 발권력으로 때우는 이런 일은 국회 감시조차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