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평택 반도체단지 건설이 또다시 지역 이기주의에 치여 난관에 처했다는 한경 보도(8월25일자 A1, 8면)다. 이 지역의 건설장비업체 등으로 구성된 ‘평택시민 지역경제살리기 비상대책위원회’라는 단체가 공장 건설에 필요한 중장비와 건설 자재, 인력 등을 모두 평택에서만 조달해 쓰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심지어 건설장비의 안전 기준 완화 등까지 요구하면서 건설장비가 공사 현장에 못 들어가게 막고 있다고 한다. 삼성전자 측은 “대당 수천만원이나 하는 고가의 첨단장비를 설치하는 건물을 짓는데 어떻게 평택 것만 쓰고, 거기에 안전기준까지 낮춰 달라는 것이냐”며 난감해하고 있다.

지역 이기주의가 해도 너무하다. 얼마 전부터 안성시 일부 주민들이 삼성 평택반도체 단지에 전력을 공급할 송전선로 건설에 반대해 공사에 차질을 빚게 하더니 이번엔 평택시 주민들이 발목을 잡고 있다. 그것도 외부 환경단체가 주민들을 부추기며 끼어드는 것도 모자라, 이젠 해당지역 업체들까지 생떼를 쓰며 숟가락을 들고 나서고 있다.

평택 반도체단지는 삼성전자가 30년 만에 반도체 D램 시장에 돌아온 인텔에 맞서기 위해 추진하는 핵심사업이다. 투자금이 15조6000억원으로 단일 사업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15만명의 고용 창출과 41조원의 생산유발 효과가 예상된다. 해당 지역 경제는 일자리 창출, 소득 증대, 소비 확대 등으로 활성화될 게 틀림없다. 화성 아산 당진 등의 경제성장이 보여주는 그대로다. 이런 경제의 순환효과를 도외시한 채 기업들에 바가지를 씌워 당장 일부의 주머니를 채우고 보자는 게 바로 지역 이기주의다. 투자를 늘리고 경제를 살리자는 판에 경제적 자살로 치닫고 있다.

이미 지역 이기주의는 우리 사회의 기반을 갉아먹고 있다. 대형마트 사례도 그렇다. 전국 어디에든 새로운 점포를 내려면 이른바 상생발전협약을 통해 해당 지방자치단체 및 전통시장 상인들에게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수십억원의 발전기금에다 상인 자녀들까지 취업시키고, 주류 등은 해당 지역 제품을 의무적으로 쓰도록 요구받는다. 심지어 산업단지 입주 기업들이 지역 내 식자재·물품 제조업체와 식당을 의무적으로 이용하도록 기초의회에서 협약을 만들자는 소리가 나온다. 정부 사업도 예외가 아니다. 밀양 송전탑은 주민들의 반대로 상업운전이 예정보다 3년이나 늦었고, 삼척 원전은 아직도 좀처럼 진척이 안 되고 있다.

지역 이기주의에 갇힌 대한민국이다. 기업을 봉으로 여겨 모두들 벗겨 먹으려고 덤비고 있다. 정치가 타락한 결과다. 지자체장이 바뀌면 납품업체들이 확 바뀌고 지역상권 판도가 달라지는 실정이다. 기초의원에다 보좌관, 비서관들이 지자체 공무원들의 회식 장소까지 간여한다. 국회의원들은 여야 없이 원전 반대, 송전선 반대 선봉에 선다. 지역에 참호를 파고 기업을 먹잇감으로 만드는 사이에 국가 경제는 점점 고비용 구조로 간다. 성장의 장애물이 없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늘어간다. 삼성반도체 공장이 이렇게 치이고 저렇게 발목 잡힐 바엔 차라리 중국에 가는 게 나을 것이다. 저질 정치가 선두에 선 채 지역, 사회, 국가 전체가 점점 저질화돼 간다. 대한민국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