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청년 창업, 정책자금 지원만으론 안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창 모임에 가면 아직도 교수 월급을 받고 있느냐고 부러움 섞인 말들을 듣곤 했다. 교수를 단순히 직업으로 보기에 앞서 교육자라는 차원에서 보람을 생각하면 충분히 부러움을 살 만하다. 하지만 지방대학 교수인 친구의 말처럼 요즘은 연구실적을 내기도 버겁거니와, 대학생 취업률이 50% 중반대도 되지 않는 상황인데도 제자 취직 여부까지 교수평가 실적에 포함되는 현실이 갑갑할 따름이다. 나아가 이 염천(炎天)에도 취업경쟁에 몰린 청년들이 직무역량과는 무관한 스펙 쌓기에 몰두하고 있는 현실이 두렵기조차 하다. 한국 경제와 대학의 미래가 심히 걱정되기 때문이다.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야 할 경제는 점점 저성장 늪에 빠져들고 있고, 대학은 청년들에게 취직의 문턱을 넘기 위한 기본조건 정도로 평가절하된 지 오래다.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는 양질의 일자리는 부족한 데 비해 청년들의 눈높이는 하늘 높은 줄 모르는 탓도 있지만 학교 교육과 산업현장 사이의 괴리도 한몫하고 있다.

이런 모순적인 한국의 사회경제 구조를 감안할 때 지난 9일 정부가 제8차 무역투자진흥회의를 하면서 투자활성화대책의 하나로 벤처를 꼽은 데에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부는 미래창조과학부와 중소기업청을 중심으로 기술 및 벤처 창업을 지원해 왔고 교육부도 산학협력선도대학(LINC) 사업으로 대학 창업교육 확산에 앞장서 왔다. 이런 노력의 결과 일부 대학에서는 교육적인 성과가 조금씩 가시화되고 있기도 하다. 국제 저명학술지에 학부 학생들의 논문이 게재되는 일도 있고, 수업 중 개발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을 기반으로 벤처를 창업해 국내 대기업에 매각한 뒤 새로운 벤처를 구상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대학의 창의와 연구 결과가 벤처 창업과 일자리 창출로 대거 이어지는 것은 아직 기대 난망이다.

물론 대학생들의 벤처 창업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벤처투자도 양적으로 확대된 게 사실이다. 벤처투자액이 2014년 1조6393억원으로 늘었고 올초 벤처기업 수는 3만개를 넘었다. 하지만 정부가 그동안 내놓은 다양한 정책과 쏟아부은 돈을 생각하면 후한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 무엇보다 정부의 창업정책은 시장 선택에 의해 벤처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보다 정책자금 공급을 통해 벤처기업을 육성해 왔다고 보는 편이 맞기 때문이다. 이번 투자활성화 방안에서도 정부 스스로가 고민하고 있듯이 벤처자금이 정부의 정책자금에 의존하는 정도가 과하다. 벤처캐피털이 투자하는 기업 중 공공자금 출자 벤처캐피털 비중이 무려 62%로 미국(17%)과 이스라엘(13%)은 물론 중국(23%)과 비교해서도 지나치다. 그동안 벤처·창업 생태계의 선순환 정착을 위한 대책들이 자금지원 위주였기 때문이다.

벤처기업이 3만개가 될 때까지 대학들이 벤처 생태계에 인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도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대학들은 살아남기 위해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취업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많은 자원을 쏟아붓고 있다. 반면 창업이나 벤처기업 입사에 필요한 기업가 정신에 대한 교육이나 지원 활동에는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쓰고 있다. 정부는 청년들에게 마음껏 도전해 보라고 독려하면서 정작 발을 헛디뎌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청년들을 구제하는 문제엔 인색하기 짝이 없다.

2년여의 논의 끝에 크라우드펀딩 관련 법안이 통과돼 제도적 기반은 마련됐다지만 건강한 벤처 창업 생태계로 거듭나도록 하기 위한 시행령과 정책 정비라는 더 어려운 과제가 남아 있다. 정부, 대학, 벤처업계와 관련 기관들이 쏟아낸 대책들이 마치 ‘스파게티 볼’처럼 엉켜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봐야 한다. 창업 성공률이 5%도 안되는 상황에서 그나마 청년들이 꿈과 도전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대학들이 앗아가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면 교수라는 직업은 가시방석일 뿐이다.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insill723@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