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과 월령이 같은 두 돼지. 왼쪽은 정상, 오른쪽은 마이오스타틴 유전자 결여 돼지.
성별과 월령이 같은 두 돼지. 왼쪽은 정상, 오른쪽은 마이오스타틴 유전자 결여 돼지.
‘벨지안 블루(Belgian Blue)’는 우락부락한 근육을 자랑하는 우량 품종의 소로 유명하다. 이 소는 19세기 벨기에 육종업자들이 교배를 통해 우연히 만들어낸 품종이다. 일반 소와 비교해 사료 소모량은 많지 않지만 유전적인 이유로 근육세포가 더 많이 증식돼 소고기에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많으며 육질이 좋다고 한다.

상품성이 높은 벨지안 블루의 유전자에 대한 오랜 궁금증은 한국인 과학자의 생쥐 실험을 통해 우연히 밝혀졌다. 유전학자인 이세진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생쥐의 특정 유전자를 제거했다. 그 결과 신기하게도 벨지안 블루와 같이 우람한 근육을 가진 생쥐가 태어났다. 그 유전자가 마이오스타틴이라는 근육생성 억제인자를 만드는 유전자임을 새롭게 발견한 것이다.

이후 벨지안 블루는 물론이고 경주마와 경주견 중에서 우승하는 동물 유전자를 분석해 보니 마이오스타틴 유전자에 변이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람한 근육을 가지고 태어나는 극히 드문 아이들을 분석해 보니 역시 이 유전자에 변이가 있었다. 이를 통해 마이오스타틴은 동물의 근육세포가 많이 만들어지지 않게 억제하는 인자임이 입증됐다.

우리 대표 브랜드 한우도 벨지안 블루와 같은 우수 품종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이미 서울대 수의대 장구 교수팀과 바이오 벤처기업 툴젠은 ‘코리안 블루’ 품종을 만들기 위한 연구에 착수했다.

그런데 돼지의 경우에는 마이오스타틴 결여 품종이 개발된 사례가 없다. 실은 그런 돼지가 수만 마리 중 한 마리 비율로 우연히 태어나지만 이를 품종화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윤희준 옌볜대 교수팀은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해 최초로 마이오스타틴 결여 돼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단백질 함량이 높고 지방 함량이 낮은 돼지고기는 건강식품으로 가치가 높다. 특히 유전자변형생물(GMO)과는 달리 이 돼지 유전체에는 외부 유전자가 들어가 있지 않다. 그러나 이를 식용으로 판매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대부분 국가에서 유전자가위 기술로 만든 가축에 대한 규제 여부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유전자가위는 소, 돼지를 포함한 가축과 어류, 곡물, 채소, 과일 등 인류의 먹거리를 개량하는 데 널리 사용될 수 있다. 이 기술은 국내에서 개발해 세계인이 활용하게 될 신기술이다. 따라서 이 기술의 활용 범위와 그 결과물에 대한 제도와 정책을 외국에 맡길 것이 아니라 한국이 주도해 결정하면 세계의 기준이 될 수 있다. 다행히 최근 미래창조과학부는 유전자가위 기법을 기술영향평가 대상으로 선정했다. 이를 통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의견을 종합해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고 정부 정책에 반영되길 기대한다.

김진수 < 서울대 화학부 교수·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교정연구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