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동의 데스크 시각] 출판사와 서점, 다투지 않으려면
출판사와 서점들이 또다시 티격태격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개정·시행된 도서정가제가 수년째 불황에 허덕여온 대다수 출판사들을 구해주지 못해서다.

개정된 정가제는 신간, 구간을 막론하고 모든 책에 대해 할인과 마일리지 합계가 정가의 15%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이전에는 할인폭이 19%였다. 줄어든 할인폭만큼 서점들의 이익은 늘었다. 출판사들로선 얻는 게 없다. 오히려 사정이 나빠졌다. 책값에 거품이 끼었다는 인식 때문에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후 자진해서 1000~2000원씩 책값을 내린 곳이 많다.

출판사들은 줄어든 할인폭만큼의 이익 중 일부를 나누자고 서점에 요구하고 있다. 출판사들이 서점에 책을 공급하는 공급률(공급가를 정가로 나눈 것)을 올려달라는 것이다.

첫 단추 잘못 꿴 정가제

서점들은 반대한다.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책 판매 가격이 올라 책이 덜 팔린다는 이유에서다. 협상이 여의치 않자 출판사가 책 공급을 중단한 사례도 있을 만큼 양측의 갈등은 심상치 않다.

1970년대 출판·서점계의 자율 결의로 시작된 도서정가제가 법으로 시행된 건 2003년 2월이다. 전자상거래 육성을 위해 온라인서점에 10% 할인을 허용하도록 출판 및 인쇄진흥법에 규정한 것. 엄밀히 말하자면 정가제가 아니라 할인을 법으로 허용한 제도였다. 2007년에는 오프라인 서점에도 10% 할인이 적용됐고, 2010년에는 경품·마일리지를 포함한 할인 폭이 최대 19%로 늘었다.

이 과정에서 서점들은 할인을 위해 출판사에 책의 공급률 인하를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오프라인 서점보다 책을 싸게 팔아야 하는 인터넷 서점들로선 당연한 요구였다.

문제는 정도가 지나쳤다는 것. 도서정가제 법제화 이전에는 평균 70% 정도였던 공급률은 하락을 거듭해 50%를 밑도는 경우까지 생겼다. ‘유통 권력’이 된 대형 서점들이 공급률을 후려친다는 소리도 적잖게 들렸다. 책 시장에선 광폭 할인이 만연했다. 출판·서점업계가 자율결의 형식으로 도서정가제를 강화한 배경이다.

원인에서 답을 찾아야

시행 5개월째인 현행 도서정가제가 큰 힘을 쓰지 못하는 건 무슨 까닭일까. 편법 할인과 경품 제공 등의 허점이 많기도 하지만 정가제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애초 출판계를 어렵게 한 건 공급률이다. 출판사들은 서점에 공급률 인하를 요구하지만 한 번 내려간 공급률을 다시 끌어올리기란 간단치 않다. 더구나 대형서점과의 관계에서 대다수 출판사들의 입지는 약하다.

책은 문화공공재라고 출판계는 주장한다. 하지만 공공재든 일반 상품이든 시장의 원리에 따르는 게 순리다. 가격을 통제해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란 참으로 어렵고 복잡하다. 다수의 독자들에게 정가를 강요하기보다 출판계와 서점업계가 공급률을 일정 선 밑으로 끌어내리지 않기로 합의하면 어떨까. 서점이 출판사에 지나치게 낮은 공급가를 강요할 수 없도록 공급률 하한선을 법으로 정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정가제의 미비점을 공급률 제한으로 보완해도 좋을 것이다. 정가제든 공급률 하한제든 시장에 개입하는 건 마찬가지다. 이왕이면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개입이 낫지 않을까.

서화동 문화스포츠부장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