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경쟁에 인수금융 금리도 年3%대로
돈 굴릴 데를 찾지 못한 은행들의 출혈 경쟁이 심해지면서 은행권이 사모펀드(PEF) 등에 인수합병(M&A) 자금을 빌려주는 인수금융 금리가 사상 처음 연 3%대로 내려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인수금융 금리는 연 6% 이상이었으나 저금리 기조로 1년 만에 절반으로 떨어졌다. 연 1%대 예금 및 회사채 금리, 연 2%대 주택담보대출 금리에 이어 연 3%대 인수금융 금리가 저금리 시대를 상징하는 흐름이 되고 있다.

5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미국계 사모펀드인 칼라일이 작년 초 ADT캡스를 인수할 때 빌린 1조3000억원을 연 3%대 이자율로 차환(리파이낸싱)하기로 하자 우리·산업은행 주축의 컨소시엄과 외환·신한은행 주도의 컨소시엄이 이를 따내기 위해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 양쪽 모두 연 3%대 후반 금리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칼라일은 작년 3월 ADT캡스를 2조655억원에 인수했고 이 가운데 9869억원을 외환은행 주선으로 16개 대주단에서 선순위 대출을 받았다. 금리는 연 6.6%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차환 계획은 금융권에서 조달한 금액 외에 국민연금 등에서 투자받은 돈까지 합해 1조3000억원이다.

ADT캡스 차환 거래는 2010년 오비맥주(1조5000억원), 2012년 씨앤앰(2조2000억원) 리파이낸싱에 이어 세 번째로 규모가 크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 자산을 늘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칼라일로서는 중도 상환 수수료 부담도 거의 없다. 국민연금엔 수수료를 내지만 외환은행을 포함한 16개 대주단으로부터 중도 상환 수수료를 면제받기로 했다. 일반 가계 대출의 중도 상환 수수료 발생 기간은 3년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시중에 유동성이 과하게 남아돌면서 갈수록 돈을 빌리는 쪽이 유리해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은 은행 간 대출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하나금융과 외환은행만 해도 ‘한 몸’이 된 사이지만 ADT캡스 리파이낸싱에선 경쟁자다. 외환·신한은행 컨소시엄이 있지만 하나대투증권은 우리은행 컨소시엄에 줄을 섰다.

은행들은 금리 조건이 갈수록 불리해지고 있지만 경쟁적으로 인수금융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우리은행은 한화자산운용과 공동으로 인수금융 전용 펀드(사모대출펀드)를 만들기로 하고 조성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6월 신한은행이 6000억원 규모의 사모대출펀드를 조성하며 인수 금융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것에 대한 대응 성격이 짙다.

하나금융그룹에선 하나자산운용이 교직원공제회(5000억원), 하나은행(300억원) 등과 함께 작년 11월 7000억원 규모 펀드 결성을 마무리했다. 대형 사모펀드 운용사 대표는 “일본의 인수금융 리파이낸싱 금리가 연 1%대로 내려가 있는 만큼 지금의 연 3%대 인수금융 금리도 바닥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