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삼성·한화 빅딜, 마무리 서둘러라
지난해 11월 삼성그룹과 한화그룹 간 ‘빅딜’이 있었다. 삼성그룹이 방위산업체인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 석유화학 계열사인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토탈을 한화그룹에 매각했다. 매각규모는 1조9000억원으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대 규모의 그룹 간 빅딜이다.

삼성과 한화의 빅딜은 각 그룹이 특화하고 있는 전문분야에 집중하자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화그룹은 이번 빅딜을 계기로 이미 자리잡은 방위산업과 석유화학 분야에서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체제를 갖추게 됐다. 삼성그룹은 지난 번 삼성코닝 매각에 이어 전자와 금융이라는 핵심부문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두 그룹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찾은 셈이다.

그런데 삼성과 한화의 빅딜은 노조의 반발로 그 후속작업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삼성종합화학을 제외하고 삼성토탈, 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 등에서 현장실사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큰 규모의 손실을 기록한 삼성테크윈은 과도한 수준의 위로금 지급이 어렵다는 입장이어서 노사가 갈등을 겪고 있다.

명실공히 국내 최고 그룹인 삼성그룹 계열사에 있다가 하루아침에 다른 그룹 계열사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마음 편한 일이 아닐 것이다. 삼성 직원으로 입사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소속이 바뀌게 된 상황이 당혹스러울 것이라는 점도 공감이 간다. 그렇지만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해 불편하게 남아있기보다는 자신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사업환경과 규모를 확보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한화그룹은 이미 방위산업에서 유도무기, 항법장치, 탄약 등을 생산하고 있는데 여기에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가 합류하면 K-9 자주포, 경공격기 FA-50 엔진과 레이더, 해상시스템 등 육·해·공군의 거의 모든 무기체계를 확보하게 돼 국내 방위산업 분야 선두주자로 도약하게 된다.

석유화학 부문에서는 LG, SK, 롯데 등을 앞서면서 18조원 매출규모로 국내 1위에 오르게 된다. 한화그룹은 필름, 파이프, 비닐 등의 주원료인 폴리에틸렌(PE), 폴리염화비닐(PVC) 등을 생산했으나 향후 제품군이 폴리프로필렌, 파라자일렌, 스티렌모노머 등으로 다양화되고 에틸렌 생산능력도 세계 9위 수준인 291만t으로 늘어난다. 4개사는 이처럼 각각 방위산업 분야와 석유화학 분야에서 한화그룹의 부문별 경쟁력을 이끌게 돼 큰 시너지 효과와 범위의 경제를 잘 구현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복투자와 과잉경쟁으로 점철된 한국 경제는 이제 좁아진 세계시장에 대비해야 한다.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등 성장엔진을 업그레이드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동안 선단식 경영이라고 비판받아온 재벌그룹들이 자발적으로 선택과 집중을 통해 각자 경쟁력을 최적화하는 선택을 한 것은 산업경쟁력을 위해 다행스러운 일이다.

삼성과 한화의 빅딜은 외환위기 시기에 있었던 정부의 강제적인 빅딜이나 인위적인 구조조정과는 구별된다. 사업을 축소하고 인력을 정리하기 위한 구조조정도 아니다. 삼성그룹과 한화그룹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도록 자발적으로 빅딜을 감행한 것으로써 모두가 승자가 되는 ‘윈·윈’의 선택이다. 앞으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재벌그룹 간 자발적 빅딜이 계속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고무적인 현상이다.

공무원연금 협상, 노·사·정 협상 등 세간을 들썩이게 하는 여러 논의가 마무리되지 않고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대기업들이 최적의 경쟁력을 찾아서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든든하다. 이제는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야 할 때다.

조성봉 < 숭실대 교수·경제학 sbcho@ss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