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제2 중동 붐'을 기대한다
쿠웨이트시티는 병원 공사가 한창이다. 20년여년간 방치됐던 8개 국립병원 시설에 대한 대대적인 신증축 공사가 진행중이다. 카타르 도하는 시내 전체가 공사판이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 맞춰 도시 전체를 새롭게 꾸민다는 목표 아래 1000억달러(약 110조원) 이상을 투입할 계획이다.

중동에 부는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오일 머니가 신도시 건설이나 교육·의료 인프라 구축에 집중되고 있다. 저유가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탈(脫)석유’를 외치며 제조업 육성에도 나서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 걸프만 인근 국가들이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이들 4개국이 속한 걸프협력회의(GCC)의 경제력은 막강하다.

세계 원유 매장량의 3분의 1을 보유하고 있고 국내총생산(GDP)규모는 세계 12위권이다. 2013년 기준 1인당 GDP는 모두 4만달러(한국 3만3791달러)를 넘는다. 카타르는 14만5894달러로 세계 1위다. 2020년 두바이 엑스포,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등 ‘빅 이벤트’가 예정돼 있다. 출산율이 여전히 높아 전체인구 중 20세 이하 비중이 50% 안팎이다. 평균 연령도 서유럽보다 10세 이상 낮다.

한국은 GCC의 중요성을 일찍 간파하고 40년 전인 1975년에 중동 시장에 진출했다.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한 한국인 근로자가 10만명이 넘었을 정도다. 한국은 중동 건설 붐을 통해 고속 경제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런 좋은 기억은 비즈니스를 확대하는 데 큰 자산이 될 수 있다. 중동 지역에 병원을 짓거나 병원시스템을 수출하면 국내 의료진뿐 아니라 일반 직원들의 진출도 늘어 국내 청년실업 문제도 일부 해결할 수 있다. 더 큰 시장은 중동인들의 해외 의료관광이다.

사우디, 쿠웨이트, UAE, 카타르 등 4개국 정부가 1년에 자국민에 지원하는 해외 의료관광 비용은 10조원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독일과 영국 병원으로 몰리는 GCC 국가 해외 의료관광객의 10%만 유치해도 연간 1조원 규모의 오일 머니를 잡을 수 있다. 병원뿐 아니라 여행, 유통 업계까지 반사이익을 누리게 된다. 중동의 교육서비스 분야도 블루오션이나 마찬가지다. GCC 국가들은 자국민의 해외 유학 비용을 전액 지원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순방으로 중동 비즈니스가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특히 GCC와의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기대가 높다. 한국은 2008년부터 GCC와 FTA협상을 추진하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협상을 중단했지만 최근들어 희소식이 들려온다. GCC가 미뤄 왔던 싱가포르 및 EFTA(스위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와 잇따라 FTA를 맺는 등 한·GCC FTA 체결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분석으로는 한·GCC FTA를 통한 관세절감 추정액은 연 1조원에 달한다. 한·미 FTA에 버금가는 규모다. GCC의 서비스 및 정부 조달시장이 개방될수 있고 비관세장벽도 완화할 수 있다. 가격이 들쑥날쑥한 석유 자원을 안정적으로 수입하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한·GCC FTA를 통해 제2 중동붐을 일으키려면 GCC가 추구하는 산업전략과 현지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민간 차원의 상생 협력관계를 이끌어 내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 기업들은 중동 지역 내 대형 프로젝트에 입찰할 때 과당경쟁을 자제해야 한다. 현지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다. ‘물 들어온 김에 노 젓는다’는 말처럼 한국과 GCC 간 우호적인 분위기가 ‘제2 중동 붐’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민관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김극수 <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