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이 오래 사는 무전장수 시대] 원금 2배 불리는 데만 35년…'중수익' 분산투자로 노후 대비할 때
대기업에 다니는 김영기 씨(45)는 8000만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다. 서울 정릉동에 아파트를 사면서 낸 빚 1억2000만원은 몇 년 전 모두 털어냈다. 각종 세금·공과금과 저축 등 고정비용을 빼고 난 월급 400만원 중 생활비와 두 아이 교육비를 내고 나면 매달 50만원가량이 남는다. 목돈 5000만원도 손에 쥐고 있다. 주변에선 부러워할 만한 직장인처럼 보이지만, 김씨의 속내는 복잡하기만 하다. 은퇴 후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져서다.

◆‘복리의 마술’도 이젠 옛말

김씨는 지난해 1월 목돈 5000만원을 발품 팔아 찾아낸 저축은행 두 곳의 1년짜리 정기예금(금리 연 2.8%)에 넣어 놨다. 그런데 올초 만기 때 나온 이자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자소득세(15.4%)를 떼고 받은 실제 이자가 118만4400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재예치할까도 고민했지만 곧바로 포기했다. 명목금리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뺀 실질금리가 최근 1% 수준으로 떨어져 더 이상 정기예금만으로 돈을 굴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김씨는 어쩔수 없이 약간의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여러 금융 투자상품에 분산투자해 수익률을 높여보기로 했다. 그래야 현금자산을 불려 노후대비가 가능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돈 없이 오래 사는 무전장수 시대] 원금 2배 불리는 데만 35년…'중수익' 분산투자로 노후 대비할 때
목돈 5000만원 중 2000만원은 6개의 원금 보장형 주가연계증권(ELS) 상품과 4개의 원금 비보장형 ELS 상품에 분산 투자했다. 나머지 3000만원은 중국 유럽 미국 등과 연계된 상장지수펀드(ETF) 상품 3개에 쪼개 넣었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주가 급등락 등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지 않을 경우 ELS를 통해 연 5%, ETF를 통해 연 7%가량의 수익률을 거둘 것으로 예상됐다.

매달 생기는 여윳돈 50만원은 자신과 부인 명의로 반씩 나눠 변액연금에 들었다. 국내와 해외펀드 투자 비중이 각각 40%, 60%인 상품이다. 연 5%의 수익을 기대하고 있다.

김씨가 ‘저축’에서 ‘투자’로 돌아선 이유는 저금리 탓이다. 실질금리는 지난해 연 1.12%에 그쳤다. 금리도 연 1% 수준에서 고착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예금 금리가 연 5%일 때 원금이 두 배가 되려면 약 14.2년이 걸린다. 연 2%면 35년, 연 1%면 69.7년이 소요된다. 정기예금으로 돈을 굴려 얻은 이자로 노후를 대비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금리가 너무 낮아져 ‘복리의 마술’도 예전같지 않다. 복리는 원금뿐 아니라 이자에 이자가 붙는 방식이다. 월복리 상품은 단리보다 금리가 연간 0.2~0.3%포인트 정도 높다. 1억원을 넣고 연 2.0% 단리를 받으면 25년간(300개월) 이자는 4230만원(일반세율 15.4% 적용)이다. 이를 월복리로 굴리면 5482만원으로 늘어난다. 뒤집어 보면 1억원을 25년이나 월복리로 굴려도 자산은 원래의 1.5배에 그친다는 얘기다.

◆예금 집착 털고, 분산투자해야

상황이 이런데도 은행 예금에만 집착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금융자산 투자 시 선호 상품’으로 은행과 제2금융권 예금을 꼽은 사람이 91.6%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저축’으로 굳어져 있는 재테크에 대한 고정관념을 ‘투자’ 개념으로 옮겨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장경영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이제 저축 기간이 길어질수록 원금과 이자가 커지는 ‘눈덩이(snow ball) 효과’를 누리기 어려운 시대”라며 “노후 대비용 재테크에 대한 기본 인식을 투자로 전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저금리 환경일수록 투자를 통해 현금자산 덩치를 키워 놔야 노후대비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연 2% 금리에서 수익률을 3%포인트 올려 연 5%로 만들면 원금이 두 배 되는 데 걸리는 기간은 35년에서 14년으로 21년이나 단축된다.

다만 투자에서 유의할 점은 ‘분산’이다. 자금을 적립식으로 나눠 투자하는 ‘시간 분산’, 주식이나 채권 등으로 나눠 투자하는 ‘자산 분산’ 등이다. 해외주식 배당주 가치주처럼 동일 자산군 내 분산과 특정 국가에 쏠리지 않는 ‘지역 분산’도 필요하다.

예금 비중을 확 줄이고 분산투자에 나서 쏠쏠한 재미를 본 중견기업 직장인 송현석 씨(47)의 예를 보자. 6500만원의 연봉을 받는 송씨는 서울 불광동에 4억원짜리 아파트와 목돈 1억원을 갖고 있다. 2013년 6월 시중은행에서 금리 연 2.6%짜리 1년 만기 정기예금에 넣어 지난해 6월 만기 때 이자소득세를 빼고 219만9000원의 이자를 받았다. 금리가 계속 떨어지자 그는 거래은행에서 재무상담을 받고 금융투자 상품에 분산투자하기 시작했다.

작년 7월께 정기예금은 2000만원(연 2.5%)만 남겨 놓고 8000만원을 배당펀드(4000만원)와 연금보험(4000만원)에 나눠 넣었다. 6개월이 지난 작년 말께 수익(세전)을 계산해 보니 정기예금 이자(25만원)와 펀드(180만원), 연금보험(75만4000원) 등을 합쳐 280만4000원이었다. 연 수익률로 환산해 따져보니 5.48%(연간 560만8000원)에 달했다.

김혜령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투자 과정에서 원금 손실 등의 리스크가 있지만, 초저금리일수록 감수해야 할 위험보다 투자로 인한 기대수익률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커진다”고 조언했다.

■ 70년

예금 금리가 연 1%일 때 원금이 두 배가 되는 데 걸리는 시간. 금리가 더 떨어져 연 0.5%가 되면 139년이 필요하다. 저금리 기조를 감안하면 예금으로만 돈을 굴려 은퇴 이후를 대비하기가 점점 어려워질 전망이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