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전장수(無錢長壽) 시대…3명 중 1명 '은퇴 파산'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지난해 55세 이상을 대상으로 임대아파트 관리 등을 하는 지역별 시니어 사원을 모집했다. 월급은 57만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전체 2000명 모집에 8545명이 지원, 평균 4.3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서울 서초·강남구의 경쟁률은 14.4 대 1에 달했다. 전체 지원자의 35%가 70세 이상이었다.

김모씨(65)는 “10년 만에 은퇴 자금을 모두 까먹고 한 달에 50만원 나오는 국민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며 “생활비가 모자라 다시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씨와 같은 사람을 전문가들은 ‘은퇴 파산자’라고 부른다. 죽기 전에 집을 포함한 모든 재산이 고갈된 사람을 말한다. 남의 얘기가 아니다. 올해 60세인 사람을 기준으로 했을 때 세 명 중 한 명은 ‘은퇴 파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경제신문이 22일 미래에셋은퇴연구소에 통계청과 삼성생명 설문조사 결과 등으로 나타난 평균적인 60세의 은퇴 파산율(기대수명 전 은퇴 자금이 고갈될 확률) 계산을 의뢰한 결과 36.6%로 나타났다.

세 명 중 한 명은 사망 전에 은퇴 자금을 모두 소진한 채 오로지 국민연금에만 기대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의 평균적인 60세는 주택을 포함해 3억3660만원(통계청, 2014년 가계금융·복지조사)을 갖고 은퇴해 85세(통계청, 2013년 생명표)까지 한 달에 211만원씩(삼성생명, 2014년 은퇴백서) 쓰면서 사는 사람이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는 이 자료를 토대로 모든 자산을 금융상품에 투자해 얻을 수 있는 수익률 등을 감안, 자체 개발한 모형을 통해 은퇴 파산율을 산출했다.

준비한 은퇴 자금이 평균치보다 적거나 병원비 등 긴급자금으로 생활비가 더 들어가면 은퇴 파산율은 높아질 수 있다. 금리가 더 떨어져 금융자산 수익률이 낮아지는 경우에도 은퇴 파산율은 올라간다. 돈 없이 오래 사는 ‘무전장수(無錢長壽) 시대’의 한 단면이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