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들은 개인회생을 신청하면 법원으로부터 100% 인가받을 수 있다며 인터넷 광고 등을 통해 채무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한 채무자가 인터넷에 올라온 변호사 사무실의 개인회생 광고를 보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변호사들은 개인회생을 신청하면 법원으로부터 100% 인가받을 수 있다며 인터넷 광고 등을 통해 채무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한 채무자가 인터넷에 올라온 변호사 사무실의 개인회생 광고를 보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법원의 개인회생제도가 악용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다. 채무자들을 부추기는 변호사와 법무사 등도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개인회생제도를 가장 잘 아는 전문가다. 전문가답게 허점을 파고들어 개인회생제도의 취지를 퇴색시키고 있다. 이들이 노리는 것은 건당 100만원 안팎의 수임료다. 지난해 개인회생 신청 건수(11만707건)를 감안하면 개인회생 수임료 시장의 규모는 1100억원에 이른다.

◆개인회생 부추기는 법무사들

[흔들리는 신용사회] "예금 숨기고 편의점 알바 뛰세요"…법무사가 '빚 탕감 꼼수' 코치
기자는 8일 서울 강남에서 영업하고 있는 한 법무사에게 개인회생을 신청하고 싶다며 전화를 걸었다. 다음은 통화 내용의 일부다.

-갚아야 할 돈을 더 줄이는 방법이 있나요?

“소득을 줄여야 합니다. 편의점 같은 데 잠시 취업해서 사업자등록증에 사장님 확인만 받아 오면 됩니다.”

-그럼 편의점에서 일을 계속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법원에서 인가받은 뒤 그만두면 됩니다. 인가하고 나서는 확인 안해요.”

-편의점에서 사업자등록증을 달라고 하면 줄까요?

“편의점에 사업자등록증 다 비치돼 있어요. 안되면 그거 그냥 카메라로 찍어 오세요.”

-또 준비할 건 없습니까?

“아까 은행 대출도 있다고 했죠? 그럼 그 은행에 예금도 있습니까? 있으면 다 찾아서 잔액을 비워두세요. 개인회생 신청하면 은행에서 예금을 가져가거든요.”

-개인회생 인가받을 확률이 절반 정도라는데요?

“말씀드린 대로만 잘 따라오면 100% 인가받을 수 있습니다.”

이 법무사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 개인회생 전문가들은 대부분 사실이라고 말한다. 지난해 4억여원의 빚을 지고 개인회생을 신청한 자영업자 A씨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월 150만원을 내겠다고 했다가 채권자들의 반발을 샀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한 개인회생 전문변호사는 “법원이 약자의 편에 서 있기 때문에 법무사들이 시키는 대로 조건만 맞춰서 준비하면 빚을 탕감받을 수 있다”며 “금융회사들이 악성 개인회생 신청자임을 알고 이의를 제기해도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브로커와 법조인의 나쁜 공생

개인회생 수임료 시장을 놓고 개인정보 브로커와 변호사 및 법무사, 사무장들은 공생(共生)을 하기도 한다. 법무사 사무장들은 불법으로 개인정보를 취득해 자격도 없이 개인회생 신청을 대행하고 있다. 지난달 개인정보범죄 정부합동수사단에 붙잡힌 사무장 3명은 개인정보 판매상에게 건당 50만~60만원씩 주고 개인회생 신청자 470여명을 모아 7억여원의 수임료를 챙겼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법무사들에게 월 60만원씩 주고 명의를 빌렸다.

다른 사무장들은 변호사 명의를 빌리기도 한다. 서울 서초동 변호사 7명은 개인회생 건당 10만원 안팎의 고정 수입을 받고 사무장 등에게 변호사 명의를 빌려주다 걸려 지난달 대법원에서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다. 개인회생을 신청하려는 사람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빚을 더 많이 탕감받을 수 있는 노하우가 공유되고 있다. 자산을 다른 사람 이름으로 옮겨 놓는 것이 대표적이다. 자산과 소득을 줄여야 변제금액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악의적으로 빚을 탕감받으려는 사람이 늘면서 법원의 개인회생 인가율은 2010년 86.1%에서 지난해 71.4%까지 하락했다.

김일규/이지훈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