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벤처 3만 시대, '와해적 혁신'의 토대
드디어 벤처 인증기업이 3만개를 돌파했다. 2012년 2만8000개를 넘었던 벤처기업 수는 3년째 제자리걸음을 하다가 이제야 3만개를 돌파한 것이다. 그래서 벤처 3만 시대 돌입을 축하하기보다는 이제야 3만 벤처 시대에 들어선다는 아쉬움이 우선한다.

1996년 불과 500개로 시작한 벤처는 5년 만인 2001년 1만개를 돌파했다. 세계 유례없는 질풍노도 벤처 열풍으로 한국은 미국 다음의 인터넷 강국으로 부상했고, 이스라엘이 부러워한 세계 최고의 벤처 생태계를 형성했다. 그런데 코스닥 통합, 벤처인증 보수화, 주식옵션 보수화, 기술거래소 통합이라는 4대 벤처 건전화 정책을 편 결과, 1만1300여개를 헤아리던 벤처는 7700개로 줄었고 10년 벤처 빙하기가 도래한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10년 빙하기에도 불구하고 벤처의 매출은 삼성전자를 넘어서는 350조원 규모에 달하고, 국가 경제성장의 3분의 1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쉬운 것은 10년 벤처 빙하기가 없었다면 지금 한국은 5만개가 넘는 고품질 벤처가 혁신을 주도하는 세계적인 벤처대국이 됐을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도 한국 벤처의 매출액은 이스라엘 국내총생산(GDP)보다 크고 국민 1인당 벤처 기업수도 이스라엘보다 많다. 벤처는 거품이 아니고 신경제로 가는 희망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현 정부에서 추진된 창조경제 정책의 결과 카카오, 쿠팡, 우아한 형제 등 스타 벤처들이 재등장하고 벤처 창업이 다시 활성화로 돌아서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아마도 창조경제 정책의 가장 큰 가시적인 성과는 창업 활성화로 봐야 할 것이다.

이제 세계 경제는 ‘기업가 정신’이라는 벤처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고 있다. 혁신을 통해 가치창출을 하는 벤처가 고용과 성장의 쌍끌이 역할을 한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이제 한국은 점진적 혁신이 아니라 ‘와해적 혁신’을 통해 창조경제 선도국가로 도약해야 한다.

창조경제연구회 보고서에 따르면 창업 벤처 하나의 미래가치가 평균 17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우수 인재들의 최우선 선택 직업이 공무원과 대기업에서 벤처창업으로 바뀔 때 국가는 지속가능한 성장과 고용을 창출할 것이다. 그런데 아직 창업에 도전하는 청년들은 신용불량의 공포를 안고 간다. 창업자 연대보증의 원칙적 폐지(올해 목표 20%)가 한시적으로 요구된다. 이를 위해 기술신용보증기금에 연간 1000억원만 보전하면 된다. 그 결과 연간 4000개의 벤처 창업이 일어나면 국가는 68조원의 미래가치를 얻게 된다. 투입된 1000억원의 수십 배 증세 효과도 발생한다.

창업벤처는 엔젤과 크라우드펀딩에서 초기 자금을 조달한다. 지금 엔젤투자자 세액 공제는 벤처 인증기업에 한정하고 있어 실질적 창업 벤처는 엔젤투자에서 소외되고 있다. 시급히 혁신해야 할 당면 과제다. 크라우드펀딩은 핀테크(금융+기술) 시대에 맞는 활성화가 아니라 규제 관점에서 법이 추진되고 있다. 포지티브에서 네거티브로의 패러다임 변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투자자들은 회수시장이 있어야 벤처에 투자한다. 코스닥 활성화가 중요한 이유다. 2001년 연간 170개가 넘던 코스닥 상장 기업 수를 회복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벤처 투자 회수의 90%는 인수합병(M&A)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한국은 2% 미만이다. M&A 시장이 한국 벤처의 병목인 것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제도적 지원 차원의 접근은 한계가 있다. 혁신을 거래하는 혁신 플랫폼이 국가 차원의 절실한 과제일 것이다. 여기에 유럽의 ‘오슬로 아젠다’와 같이 기업가 정신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 이제 정답이 아니라 문제를 찾는 교육으로 전환해야 할 때다.

이민화 < KAIST 초빙교수·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 mhleesr@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