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땅콩회항'은 항로변경을 의도했나
대한항공 비행기가 탑승구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것에 대해 항로를 변경한 것이냐가 세간의 화제다. 국민은 물론 조종사들 간에도 논란이 있다. 항공보안법 제42조에 ‘항로변경죄’가 규정돼 있다.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운항 중인 항공기의 항로를 변경하게 하여 정상운항을 방해한 사람은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다.

문제의 핵심은 뉴욕 JFK공항의 탑승구를 떠나 활주로를 향해 17m를 견인차에 의해 끌려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항공기가 과연 항로를 변경한 것인가에 있다. ‘항로(航路)’는 ‘항공로’를 줄인 말이다. 항공법(제2조 제21호) 정의에 따르면 ‘항공로란 국토교통부 장관이 항공기의 항행에 적합하다고 지정한 지구의 표면상에 표시한 공간의 길을 말한다’고 규정한다.

항로변경죄는 ‘운항 중인 항공기’의 항로를 변경하는 범죄이기 때문에 일단 ‘운항’의 개념을 알아야 한다. 항공보안법 제2조 제1호는 ‘운항이란 승객이 탑승한 후 항공기의 모든 문이 닫힌 때부터 내리기 위하여 문을 열 때까지를 말한다’고 규정한다. 이를 근거로 검찰은 문을 닫고 탑승구를 떠난 대한항공기가 이미 운항을 개시했다고 본 것이다. ‘운항’에 대한 검찰 해석에는 잘못이 없다.

‘지구 표면상에 표시한 공간의 길’인 항로는 반드시 시작점과 종점이 있다. 항공기의 출발지는 당연히 지상일 것이므로 이 사건처럼 지상의 행위만으로 항로변경죄가 성립할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예컨대 테러리스트가 지상에서 기장에게 목적지 변경 등 항로를 바꾸도록 위협했다면 항로변경죄에 해당하는 행동 실행에 착수했다고 볼 수 있고, 항로변경죄를 적용할 수 있다.

항로변경죄는 형사범죄다. 모든 형사범죄에는 고의(또는 과실)가 있어야 한다. 항로변경도 범죄로 성립하려면 범죄를 저지르려는 ‘고의’, 즉 항로를 변경시키려는 의도가 있어야 한다. 테러리스트처럼 조종사에게 물리적 위협을 가해 출발 자체를 못하게 하거나 다른 목적지 또는 경유지로 향할 의도를 실현하려는 경우다. 또 범죄가 성립하려면 범죄가 실현 가능해야 한다. 살인의 방법으로 설탕물을 마시게 했다고 해서 살인죄를 적용할 수 없듯이 실현 가능하지 않으면 해당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 사건에서처럼 문제가 되는, 지상에서의 항로변경만 보기로 하자. 지상에서의 항로변경은 목적지 또는 경유지 변경을 지시하는 것 말고는 없다고 봐야 한다. 이륙을 저지한 행위는 출발지를 목적지로 하는 것을 말하므로 결국 목적지 변경에 포함된다. 항로변경죄가 성립하려면 조현아 씨(피의자)에게 계획된 출발지나 목적지 또는 경유지를 벗어나거나 항공기 이륙 자체를 저지할 의도가 있었는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정황을 보면 사무장을 항공기에서 내려놓고 이륙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두고 계획된 최종 목적지(인천공항)나 경유지를 변경할 의도까지 있었다고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물론 피의자가 “항공기를 띄우지 않을거야”라고 말한 것은 이륙 자체를 저지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사무장이 내리면 출발할 수 있다는 조건도 테러리스트가 제시하는 어떤 조건과 뭐가 다른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항공기를 띄우지 않는 것은 아주 잠시 동안만 가능할 뿐이다. 아무리 항공사의 부사장이라고 해도 탑승수속이 끝난 정기노선의 운항취소는 불가능하다. 설탕물로 살인을 할 수 없듯이 말이다.

이번 사태를 두고 법이 미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법이 미비한 게 아니다. 상식으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이 사건은 하나의 해프닝이었으나 항공기 내에서의 해프닝은 매우 민감하므로 모두가 주의해야 한다.

최준선 <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