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천자칼럼] 치약

1990년대 3D게임 ‘둠(Doom)’은 괴물들의 기괴한 소리가 압권이었다. 그런데 괴물 효과음이 치과 환자들의 비명소리를 녹음한 것이라고 한다. 성인도 치과라면 공포스러운데 그럴 만도 하다.

치과 가기 겁난다면 평소 자주 양치질을 하는 게 필수다. 하지만 칫솔에 치약을 묻혀 이를 닦는 양치를 한자로 ‘洋齒’로 아는 이들이 많다. 이는 한자를 잘못 유추한 오류다. 고려 때 《계림유사》를 보면 버드나무 가지, 즉 양지(楊枝)를 잘라 이쑤시개처럼 썼다고 한다. 양지가 양치로 변형됐고, 일본으로 건너가 ‘요지’가 됐다.

인류 최초의 치약은 기원전 5000년 이집트를 꼽는다. 화산재와 몰약, 소발굽을 태운 재에다 계란·굴 껍데기와 결정이 고운 연마제를 섞어 만들었다. 치아 미백이 유행한 로마에선 소변을 치약처럼 썼다. 비위생적이지만 과학적 근거가 없지 않다. 소변의 암모니아 성분이 치석의 뮤탄스균이 만들어내는 젖산을 제거해 산성에 취약한 치아 법랑질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

18세기 유럽에선 가루치약이 등장했다. 그러나 벽돌 도자기를 으깬 가루 연마제가 오히려 치아를 마모시켜 해로웠다. 그러다 차츰 화학, 의학 지식이 축적되며 암모니아 글리세린 탄산염 등의 성분이 추가돼 치아 건강에 도움이 되는 치약으로 발전했다. 1873년 미국에서 새뮤얼 콜게이트가 가루치약을 병에 담아 판매했고, 1908년엔 그의 다섯 아들이 튜브 치약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선 일본 라이온사가 1889년 개발한 가루치약이 들어왔지만 값이 비싸 서민들은 여전히 소금을 썼다. 6·25를 전후해 미군 PX에서 흘러나온 콜게이트 치약이 판치던 시절에 1954년 락희화학(현재 LG생활건강)의 ‘럭키치약’이 등장했다. 럭키치약은 본래 칫솔 판매부진을 만회하려고 개발한 것인데, 국산치약 시대를 열며 LG그룹의 토대가 됐다. 이어 1981년 선보인 페리오치약은 국민 1인당 30개꼴인 15억개가 팔렸다.

한류바람을 타고 국산 치약이 중국에서 명품 대접을 받고 있다고 한다. 한경 보도에 따르면 LG생활건강의 죽염치약은 지난해 현지에서 1억618만달러(약 1152억원)어치가 팔려 국내 매출(660억원)의 두 배에 달했다. 한방기술을 접목하고 프리미엄 전략을 펴, 단순 위생용품을 매출 효자로 만든 것이다.

중국의 치약시장은 약 3조원 규모로 한국의 10배에 이른다. 양치질하는 비율도 아직 도시 85%, 농촌 50%여서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중국에서 돈 벌 거리는 아직도 많은가 보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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