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제주의 두 진풍경
말 많고 탈 많았던 제주민군복합항이 올 연말에야 완공된다. 1993년 해양 강국을 위해 해군기지가 시급하다는 국가적 결정이 내려진 지 22년 만이다. ‘강정마을’로 대표된 이 국책사업이 겪은 우여곡절은 낱낱이 기록으로 남겨둬야 한다. 내년부터라도 제주 기지는 제 소임을 해낼까. 무역 1조달러 시대, 해상교역길인 제주~이어도의 바다를 수호하는 역할을 해낼 것인가.

강정마을이 신문에선 뜸해졌지만 최근 사정을 보면 또 난관에 부딪쳤다. 1조231억원이 투입되는 크루즈항 겸용의 복합항이 외형만 완성된 채 자칫 제 기능을 수행 못할 처지다. 기지에 맞붙은 관사 아파트 건립이 몇 달째 저지되는 딱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어렵게 기지를 건설하고 첨단 군함까지 배치해도 관사가 없으면 헛일이다. 반대 세력들은 지난해 10월부터 공사장을 천막 등으로 막아왔다. 5분 대기조의 장교 부사관들 주거시설이 없어 군항이 가동을 못하는 상황이 빚어질까 걱정이다.

다 된 국책사업 뒷다리 잡은 道

문제는 제주도가 뒤늦게 개입해 개항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지난해 11월 도는 기지 운영에 최소 필수분인 72가구 관사 건립을 철회해야 한다는 공문을 해군에 발송했다. 이런 제동 걸기는 지방자치단체와 국가적 사업의 관계, 지자체가 국책사업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원희룡 지사는 강정기지의 반대파까지 껴안았다는 사실을 널리 보여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도지사를 대선의 징검다리 정도로 여기는 게 야심 있는 지자체장들의 일반적인 정서니 원 지사도 소위 소통 능력이란 걸 내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방자치는 그렇게 휘둘릴 가치가 아니다. 마무리 단계의 국책사업 뒷다리를 잡으라고 이양한 인허가 행정권도 아니다.

주민들 입장에선 실상 더 희한한 광경이 제주에서 빚어지고 있다. 강정기지 건과 달리 이번엔 원 지사가 오도된 지방자치제의 피해자처럼 된 측면이 있다. 도의회와 도청의 황당한 다툼 얘기다. 최근 행정자치부가 특별감사까지 나선 갈등이다. 의원 1인당 20억원씩 별도의 예산을 달라고 했다는 폭로가 나온 것은 지난 연말, 예산편성 때였다. 원 지사와 부지사의 일관된 증언에 도의회 측은 부인하고 있으니 일종의 진실규명 게임처럼 돼버렸다.

도·의회 갈등도 자치의 한계노출

명예직으로 출발한 도의원들이 본인들 지역구에서 생색낼 예산을 요구한 게 사실이라면 감시자가 집행권까지 갖겠다는 얘기가 된다. 3조8000억원 예산에 그 정도가 대수냐고 생각했다면 더욱 큰일이다. 금액이 문제가 아니라 감시자가 예산집행자 역할까지 하겠다는 월권이 문제의 본질이다. 예산 편성권까지 전횡하는 국회를 따라하는 거라면 한국의 지방자치는 차라리 이쯤에서 접는 게 나을지 모르겠다. 중앙정부가 이례적으로 긴급점검에 나선 것도 그런 심각성 때문이다.

원 지사는 의회가 1682억원의 예산을 삭감한 데 질렸을지 모른다. 업무추진비와 지사의 공약 관련 사업비가 많이 잘렸다고 한다. 갈등의 정치공학으로 보면 속보이는 보복 같다. 정치 과잉, 특히 포퓰리즘 정치가 지방행정을 전쟁터로 만든 것이다. 도지사가 공격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도 고개를 돌려서는 국책사업의 발목을 잡았다. 제주의 두 광경은 모두 정상이 아니다. 제주도 관광객이 속초 관광객보다 적어졌다는 통계는 이것과 무관할까. 저렇게 복잡한 갈등구도에서도 제주도가 관광한국을 선도해 나갈 수 있을까.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