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김영란법이 그제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2013년 8월5일 정부가 법안을 제출한 후 17개월 만이다. 법사위의 반대가 없으면 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은 12일 본회의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런데 여야가 합의안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당초 정부가 제출한 안과는 전혀 다른 제정안이 도출됐다.

원안에는 없던 사립학교 교원과 언론사 및 대학병원 종사자들이 적용대상에 포함되면서 많게는 2000만명이 법 적용을 받게 된 것이다. 국민의 40% 가까이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초유의 과잉입법이 자행된 것이다. 국회의원을 포함한 공직자들을 겨냥해 발의된 법안에 애꿎은 보통 국민들까지 끌고들어간 것이다. 한마디로 국회의원들의 비열한 복수극이요 물귀신 작전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정부는 법안 제안 이유로 “공직 부정부패가 위험수위에 올랐다”며 “공직자의 금품 등 수수행위를 직무관련성 또는 대가성이 없는 경우에도 제재가 가능하도록 해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동안 고위공직자 중 상당수가 법의 허점을 이용해 빠져나갔다. ‘벤츠여검사’ ‘그랜저검사’는 직무관련성이 없다고 처벌을 피해갔다. 국회의원들은 불체포특권까지 남용하고 있다. 이들이 바로 김영란법의 척결대상이었던 것이다. 이런 엄연한 사실에 눈감고, 공직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립교원, 언론사 직원까지 적용대상으로 집어넣은 것은 당초 입법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려는 저질의 입법 무산전략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언론사를 포함시킨 경위는 더 가관이다. 법안심사 소위에서 공기업인 KBS에 대한 김영란법 적용을 논의 하다가 일부 의원이 KBS를 넣는다면 MBC도 뺄 수 없고 SBS, YTN 등 나머지 방송사도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결국 신문사와 인터넷 언론 등 모든 언론사가 적용 대상에 포함됐다. 모든 언론사가 하루아침에 공공기관이 된 것이다. 이런 졸속이라니.

공직자는 공법상 공권력의 주체다. 공법상 권력관계란 ‘국가와 기타 행정주체에 대해 공권력의 주체로서 개인에 대해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고 그에 따르는 행위에 특수한 법적 효력을 인정하는 법률관계’로 정의된다. 즉 공무원 등은 이 공법상 권력관계에서 일반 국민의 우위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부정·부패는 공직자가 저질렀을 때 더 엄중하게 처벌하는 것이다. 특히 세월호 사건으로 당시 해양경찰청 등의 부패가 드러났고 여기에 ‘관피아 근절’ 등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김영란법 제정에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런 저간의 사정에 눈감고, 청렴한 사회 운운하며 마치 놀라운 합의안을 도출한 듯이 국민 앞에 물귀신 법안을 내놓는 것이 대한민국 국회다. 희대의 소극이요, 웃기지도 않는 슬픈 코미디다. 특권을 가진 계급을 단속하려는 법을 국민 절반을 단속하려는 법으로 둔갑시키는 재주가 정말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