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산비탈의 양처럼 새 영토 개척을
10년 전 티베트를 여행하며 에베레스트산의 베이스캠프(해발 5500m)로 향할 때였다. 때는 10월, 티베트고원은 이미 눈발이 휘날리는 겨울이어서 기온이 영하 10도를 밑돌았다. 굽이굽이 산을 넘어 드디어 에베레스트의 품으로 자동차가 진입할 즈음, 산비탈에 있는 한 무리의 양들이 눈에 띄었다. 살을 에는 칼바람 속에서 마른 풀이라도 뜯으려고 해발 5000m에 육박하는 가파른 비탈을 딛고 선 양들의 모습이라니…. 웬만한 사람은 숨조차 쉬기 어려운 고산지대 아닌가. 양은 순하고 여리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순간이었다.

대형 사건 많았던 을미년

을미년(乙未年) 양띠해 첫날이다. 역학(易學) 전문가들은 역사적으로 을미년에 천재지변이 많았고, 전쟁이나 사변, 내란과 대형 사건·사고도 잦았다며 철저한 대비와 점검을 주문한다. 60년 전인 1955년 11월에는 베트남전쟁이 일어나 세계사는 물론 우리 현대사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120년 전인 1895년 10월에는 조선 왕조의 국모(國母)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에게 처참하게 시해된 을미사변이 일어났다. 동학농민군 지도자 전봉준이 처형되고 단발령이 시행된 것도 이때였다. 세기적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한 채 열강의 각축 속에 국운을 맡겨야 했던 조선은 그로부터 10년 후 을사늑약(乙巳勒約)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한 채 사실상 일제의 식민지가 됐다. 통일신라가 멸망한 것도 935년 을미년이었다.

역학 학자들의 주장이 과학적이냐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다시 맞는 을미년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경제회복과 우경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일본,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 다시 팽창주의로 돌아선 러시아, 셰일가스 혁명과 함께 되살아난 초강대국 미국…. 한국은 이들과 겨루며 북한이라는 예측불가의 변수마저 감내해야 한다. 새로 맞는 을미년이 평탄치 않으리라고 많은 이들이 예상하는 이유다. 특히 급격한 유가 하락과 엔저 현상 등으로 인해 불투명한 국내외 경제 여건과 불확실성 속에서 저성장을 극복해야 하는 건 발등의 불이다.

양의 야성으로 변경 개척

광복 70주년을 맞는 한국이 갈 길은 어디인가. 양띠 해를 맞아 주목해야 할 것은 양의 야생성이다. 양은 순하고 온화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무리를 이뤄 생활하면서도 다투지 않아서 평화와 안락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그러면서도 양은 척박한 돌산에서도 날렵하게 움직이는 강인한 동물이다. 평지는 물론 비탈진 산지나 울퉁불퉁한 지형, 바위언덕 등을 가리지 않고 먹이를 찾아 나선다.

양의 이런 야생성에 우리의 살 길이 있지 않을까. 저지대 평원에는 풀이 많지만 경쟁자도 많다. 야생의 양들이 무리를 지어 평원을 옮겨 다니고 산비탈을 오르며 먹이를 구하는 건 새로운 먹이가 있는 새 영토를 찾기 위해서다.

페이팔의 공동창업자이자 페이스북을 비롯한 수백 개의 스타트업 기업에 투자자로 참여한 피터 티엘은《제로 투 원》(한국경제신문 펴냄)에서 “내가 발견한 가장 강력한 패턴은 성공한 사람들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가치를 찾아낸다는 사실”이라며 경쟁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 ‘독점’하라고 강조한다. 그게 세상에 없던 것을 새로 선보여 시장을 개척하는 퍼스트무버가 되는 길이다. 한경이 ‘한계돌파(Beyond the frontier)’를 새해 화두로 던진 것은 이런 까닭이다.

서화동 문화스포츠부 차장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