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천동의 ‘원할머니국수보쌈’ 매장에서 손님들이 세트메뉴를 맛보고 있다.  ‘원앤원’ 제공
서울 신천동의 ‘원할머니국수보쌈’ 매장에서 손님들이 세트메뉴를 맛보고 있다. ‘원앤원’ 제공
서울 송파구 신천동 제2롯데월드몰 5층에는 1930년대 서울 거리를 재현한 ‘서울서울 3080’이 있다. 이 공간 안에 있는 ‘원할머니 국수보쌈’에는 하루 종일 650명 이상의 손님들이 몰린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보쌈정식과 국수를 동시에 맛볼 수 있는 보쌈반상(1만2800원), 만두정식과 국수가 함께 제공되는 만두반상(1만800원)이다.

쇼핑몰이라는 특수 상권임을 감안해도 매장 90여석이 하루 종일 꽉 찬다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이 점포를 운영하는 허정환 점장은 “세트메뉴인 보쌈국수는 가격에 비해 고객 만족도가 높아 평일 점심과 저녁뿐만 아니라 주말 매출까지 끌어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165㎡(약 50평) 규모의 이 점포 하루평균 매출은 700만원이다.

○중식에서 출발한 세트메뉴 전방위 확산

‘원할머니 국수보쌈’ 제2롯데월드몰점은 ‘정성으로 올린 반상차림’을 콘셉트로 내세우고 있다. 반상차림이라는 메뉴는 식사와 몇 가지 음식을 덤으로 끼워넣어 1만원대에 즐길 수 있는 세트메뉴다. 반상차림 세트메뉴의 인기 덕분에 ‘맛보쌈’ ‘새싹쟁반무침면’ ‘멸치주먹밥’ 등 다른 메뉴도 덩달아 잘 팔린다. 국수보쌈은 기존 보쌈전문점의 저녁 매출 쏠림현상을 없애고 점심과 저녁, 주말까지 매출 증대를 고려한 메뉴로 일단 성공작이란 평가를 얻고 있다.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시킨 뒤 옆자리에서 짬뽕을 먹는 모습을 보면 짬뽕도 먹고 싶고, 짬뽕을 시키면 짜장면도 먹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이렇듯 우리는 중국집에 갈 때마다 ‘짜장면의 딜레마’에 빠진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느 한쪽을 고르지 못해 괴로워하는 심리’를 ‘선택장애’라고 한다. 이런 소비자 심리가 새로운 수요, 즉 짜장면과 짬뽕을 한꺼번에 먹고 싶은 수요를 만들어냈고 ‘짬짜면’이라는 세트메뉴가 생기는 동기가 됐다.

세트메뉴가 외식업계에 전방위로 퍼지고 있다. 세트메뉴는 햄버거집의 햄버거 세트나 중국집의 짬짜면 세트, 치킨집의 양념반·프라이드반 메뉴가 일반적이었다. 대부분의 외식업종에서 세트메뉴의 역할은 미끼상품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 세트메뉴가 주력상품으로 취급받거나 인기상품으로 변하고 있다. 이런 경향에 걸맞게 외식업체들은 기존의 메뉴를 묶어 세트메뉴를 만들었던 형태에서 벗어나 아예 세트메뉴 자체를 새롭게 개발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얇아진 지갑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한번의 소비로 더 많은 만족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는 까닭이다. 이런 추세에 맞춰 외식업체도 실속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세트메뉴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복합 세트메뉴가 신규 수요 만들어내

최근에는 세 가지의 서로 다른 메뉴를 묶어 판매하는 음식점도 인기다. 서울 강남구 서초동에 위치한 ‘스테이크앤포’는 스테이크와 베트남쌀국수, 프렌치프라이(감자튀김) 등으로 구성된 메뉴로 인기를 끌고 있다. 스테이크(150g), 프렌치프라이, 양배추 샐러드, 쌀국수가 포함된 세트메뉴가 9900원이다. 스테이크 고기는 미국산 토시살을 사용한다. 인근 직장인과 젊은 층이 주 고객인데, 남성 고객이 절대다수다. 저렴한 가격에 고기와 쌀국수 세트를 푸짐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수제피자 또는 건강한 피자라는 매장 콘셉트로 19.8㎡짜리 작은 매장에서 시작해 현재는 110개의 가맹점을 연 ‘피자알볼로’는 네 가지 피자맛을 한번에 맛볼 수 있는 메뉴로 상승세를 타고 있다. 한판의 피자에 생불고기와 살라미햄, 유기농 크린베리, 고구마와 파인애플, 바질페스토로 이뤄진 ‘꿈을피자’란 세트메뉴가 주력 상품이다. 이 메뉴 가격은 2만7000원(라지)과 2만2000원(레귤러)이다. 강병오 중앙대 겸임교수(창업학 박사)는 “불황기 소비자들은 가격소구형으로 변하기 때문에 세트메뉴 전략을 활용하면 신규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단골 고객들은 세트메뉴에 흔들리지 않는 특성이 있어 세트메뉴로 늘어나는 매출은 새로운 수요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