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은행에 주택임대를 許하라
11월 정치권을 달군 이슈가 야당의 ‘신혼부부에게 집 한 채’였다. 소위 3포(연애·결혼·출산 포기) 세대에겐 솔깃한 얘기였다. 그러나 허경영식 공약이라고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작명은 걸작인데 내용이 졸작인 탓이다. 무상복지가 파탄났는데 또 무슨 돈으로…. 이리저리 해명 끝에 ‘도로 임대주택’이 되고 말았다.

전·월세 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집만큼 호소력 있는 게 없다. 역대 정권마다 서민 임대주택 공약을 내건 이유다. 영구임대, 국민임대, 보금자리, 행복주택 등 이름만 달랐지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20여년간 공공·민간 임대주택 160만채를 지었어도 항상 모자란다. 대기자가 4만7000명, 대기 기간은 평균 21개월에 이른다. 전·월셋값이 뛸수록 대기 줄은 더 길어진다.

官·건설사 주도 임대주택 한계

주거비용 증가는 부동산에 국한된 게 아니다. 소비 위축, 가계부채 등과도 뒤엉킨 숙제다. 전·월세 안정을 위해 임대주택 확대가 시급한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문제는 공급 주체가 없다는 점이다. 세수가 구멍난 정부는 돈이 없고, 139조원의 빚더미(부채비율 460%)에 앉은 LH는 빚부터 줄여야 한다. 건설사들은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고 발을 뺀다. 당장 급한데 누가 지을 것인가. 관(官) 주도의 공공임대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얘기다.

답은 민간에 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전·월세 대책으로 민간임대 활성화에 눈을 돌렸다. 지난 5월 인천 도화구역 사례를 보면 가능성이 엿보인다. 민·관 공동투자 리츠(REITs·부동산투자신탁)가 6개동 540가구를 10년간 임대한 뒤 분양전환하는 방식이다. 리츠 출자금의 48%(197억원)를 민간 투자회사들이 댔다. 국토교통부가 도입한 공공임대리츠 1~2호는 우리은행 삼성생명 등의 자금 7550억원을 유치했다. 이런 방식으로 LH의 부채 증가 없이 2017년까지 공공임대주택 5만가구를 지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돈 넘치는 은행·연기금 활용해야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연 2.0%)다. 시중에는 마땅히 굴릴 곳이 없어 떠도는 뭉칫돈이 수십조원이다. 물꼬만 터주면 임대시장으로 달려갈 수 있다. 그러려면 돈이 있는 기관들이 나서게끔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 아예 은행에 임대사업을 허용하면 어떨까. 은행은 건설회사처럼 도산 위험이 크지 않고 공공성도 담보된다. 리츠, 신탁, 사모펀드 등 다양한 형태로 주택 임대사업을 펼 수 있다. 해외 부동산이나 기웃거리는 연기금들의 대체투자 자금도 임대주택으로 끌어올 만하다.

하지만 ‘부동산=투기’라는 고정관념의 장벽이 견고하다. 임대주택 개발이나 다주택 보유를 투기 규제, 차익 환수, 징벌적 과세 대상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부동산 투자 목적이 시세차익(capital gain)에서 안정적 임대수익(ongoing gain)으로 바뀌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게다가 리츠와 부동산펀드의 취득세 감면은 내년부터 폐지된다. 고작 세금 1700억원 더 걷으려고 임대시장을 더 위축시키는 꼴이다.

우리보다 20년 앞서 고령화·저성장 충격을 겪은 일본에선 임대주택의 대부분을 미쓰이부동산 등 종합부동산회사가 공급한다. 임대주택을 상속하면 토지가격의 20%, 건물가격의 50%를 공제해주는 세제 인센티브도 있다. 기재부가 임대시장 구조개혁을 위해 금융, 세제, 규제완화 등 다각적인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한다. 민간에 풍부한 자본과 아이디어가 있는데 왜 활용하지 못하나.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