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50주년 경제 대도약 - 5만달러 시대 열자] 인터넷뱅킹 등록 1억명…"스마트금융 외면땐 노키아꼴 난다"
2000년, 온라인 전용 증권사인 키움증권이 탄생했다.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 국내에 도입된 건 1997년이지만 1999년까지도 지점을 통한 주식 거래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키움증권은 향후 주식 거래 패러다임이 온라인으로 갈 것이라 내다보고 온라인에 역량을 집중했다. 지점은 한 곳도 없었다.

동양증권은 2000년대 중반 공격적으로 리테일 확장정책을 폈다.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 상품 판매를 위해 지점 수를 급격히 늘렸다. 대형증권사들의 지점 수가 100개를 조금 넘었지만 동양증권은 200개에 달했다.

2014년, 두 회사의 운명은 극명하게 갈렸다. 키움증권이 시장점유율 9년 연속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반면 동양증권의 이름은 올해 대만계 유안타증권에 인수되며 사라졌다. 그룹 부도의 영향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과도하게 늘린 리테일 부분이 문제였다는 게 중론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증권사 수익의 90%가 리테일에서 나왔지만 지금은 모든 부문 중 가장 적자가 크다”고 말했다.

지점 비용 ‘100’일 때 스마트금융은 ‘2’

급격한 기술 변화에 대처하고 미래를 선점하는 게 회사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증권사가 조금 더 먼저 겪었을 뿐, 은행을 포함해 스마트금융이라는 태풍 앞에 있는 모든 금융회사가 눈여겨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올해 증권사들의 구조조정이 이어질 때 “우리가 머지않아 겪어야 할 일을 보는 것 같다”는 게 대부분 은행 관계자의 반응이었다.

실제 은행의 영업환경은 바뀌고 있다. 2006년 말 22.1%이던 은행 입출금 대면 거래 비중은 올 2분기 11.2%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인터넷 거래 비중은 21.8%에서 34.5%로 늘었다. 2006년만 해도 비중이 비슷했지만 지금은 인터넷이 3배 이상 많은 것이다. 이에 따라 은행 지점 수는 2012년 말 6757개에서 올 2분기 6452개로 300개 이상 줄었다.

딜로이트가 거래 채널에 따른 금융회사 비용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스마트금융의 매력은 더 커진다. 지점 비용을 100으로 했을 때 현금지급기는 20, 인터넷은 4, 스마트폰은 2로 나타났다. 인터넷뱅킹은 비용을 25분의 1로, 스마트폰뱅킹은 50분의 1로 줄여준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국내 은행들도 스마트금융 경쟁에 뛰어들었다. 대표적인 게 종이통장을 모바일통장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우리은행이 처음 모바일통장을 도입한 데 이어 기업은행은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내년 상반기까지 모든 종이통장을 모바일통장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신한은행도 모바일통장과 ‘전자지갑’을 결합할 계획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발급하는 종이통장만 연간 1000만개 이상인데 이를 모바일통장으로 대체하면 수백억원을 아낄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판도 바꾸는 ‘핀테크’

전문가들은 스마트금융이 산업의 판도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고 본다. 금융산업이 발전할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쇠퇴하며 축소될지의 갈림길이라는 것이다.

변화는 시작됐다. 금융과 기술의 융합을 뜻하는 말인 ‘핀테크(fintech)’는 세계 금융의 화두가 됐다. 구글 애플 아마존 이베이 등 정보기술(IT)기업들은 결제·송금·투자·대출 등 금융 서비스로 사업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노키아가 ‘전화 통화’라는 기존의 패러다임에 머물러 몰락한 반면 애플은 전화기와는 관련이 없을 것 같던 애플리케이션과의 접목을 통해 세계인의 생활 자체를 바꿨다. 핀테크 또한 기존의 금융 개념을 바꿀 것이라는 전망이 속속 나오는 이유다.

해외에서는 은행 또한 IT기업과 적극적으로 손잡고 있다. 프랑스 최대 은행 BNP파리바는 독자적으로 모바일 전문 은행 ‘헬로뱅크’를 설립했고 영국의 바클레이즈 또한 QR코드 등으로 송금과 결제를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HSBC와 네이션와이드 등 은행도 IT기업과 협력해 모바일 결제를 강화했다. 호주 커먼웰스은행은 자산 규모나 지점 수에서는 경쟁은행들보다 뒤처졌지만 온라인 채널에 집중해 브랜드 가치에서 1위로 올라선 후 격차를 벌리고 있다.

국내 상황도 마찬가지다. 2002년 1702만명이던 인터넷뱅킹 등록 고객은 지난해 8979만명으로 급증했다. 올해 혹은 내년 1억명 돌파가 확실시된다. 모바일뱅킹 이용금액 또한 늦어도 내년 초 2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한국 금융이 변화에 대처하지 못할 경우 노키아처럼 몰락하거나 세계 흐름과 동떨어져 침체됐던 일본 IT산업처럼 ‘갈라파고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반면 제대로 대처하면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점포 수 축소로 비용을 절감하고 남는 단순업무 인력을 재배치하는 등의 효율적 경영이 가능하다. 해외 진출 시에도 비용과 진입장벽 문제, 언어와 문화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 등을 극복할 수 있다.

지역은행에서 미국의 대표 은행으로 발돋움한 웰스파고의 딕 코바체비치 전 최고경영자(CEO)는 “은행은 죽었다. 은행업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하지 않고 현재 형태에 안주하는 한 은행의 미래는 없다는 경고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