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실패의 길'을 다시 가나
대공황기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밑에서 ‘실세’ 재무장관이던 헨리 모겐소는 과감하고 추진력 있는 인물이었다. 그의 정책은 무지막지한 면도 적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의 전쟁 수행능력을 없애기 위해 독일 내 공업시설을 모두 폐기한 뒤 16세기식 농업국가로 만들어 버리자는 ‘모겐소 플랜’을 입안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모겐소 장관의 뚝심이 가장 두드러진 정책은 기업의 내부유보금에 과세한 ‘내부유보세(Undistributed profits tax)’였다. 1936년 미 정부는 뉴딜정책을 집행하면서 정부 지출이 급속히 늘었고 세수 부족에 허덕였다. 미 정부는 불만의 화살을 기업으로 돌렸다. 기업들이 현금을 과세할 수 있는 배당으로 나눠주지 않은 채 쌓아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가 추정한 기업의 내부 유보금은 45억달러에 달했다.

미국의 유보금 과세 실패

모겐소 장관을 비롯한 미 재무부 인사들은 기업을 쥐어짜면 배당금을 주든지, 투자를 늘릴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미국 정부는 주요 대기업을 대상으로 유보금에 대해 7~27%의 내부유보세를 물렸다.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낭비하지 않고 신중한 결정을 하는 기업을 벌주는 제도”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기업들은 정책 의도처럼 배당을 늘린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세금공제 수단인 국채 투자로 지출의 방향을 돌렸다. 불황기 기업의 고용 여력도 떨어졌다.

결국 법 집행 2년 만인 1938년에 세율은 2.5%로 낮아졌고, 1939년에는 법안이 완전히 폐기되기에 이르렀다. 유보금 과세 전 160~170선을 오가던 다우존스지수는 1938년 중순엔 98.95까지 떨어졌다. 모겐소의 정책실험은 기업의 성장잠재력만 갉아먹은 채 막을 내렸다.

한국에서도 78년 전 미국의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사내유보금에 과세해 투자나 배당을 유도, 내수를 진작하겠다는 뜻을 밝힌 뒤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비판이 일자 최 부총리는 ‘기업소득환류세제’라는 어려운 이름으로 사내유보금 과세제를 바꿔 부르고, “과거에 쌓아놓은 유보금에는 적용하지 않겠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성장잠재력을 훼손하는 조치라는 재계의 우려는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채찍이 아니라 당근이 필요

한국이 배당 후진국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상장기업들의 배당수익률(2013년 1.1%)은 주요 20개국(G20) 중 꼴찌 수준이다. 그리스(0.7%) 정도만 한국 밑에 있다. 배당을 확대할 필요도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배당수익률을 1%포인트 올릴 때마다 증시엔 8조원의 경기부양 효과가 있다는 분석은 분명 설득력이 있다.

기업의 팔을 비틀어 배당을 늘리는 방식을 선택한 것은 정답이 될 수 없다. 한국 상장사들이 그동안 배당에 소극적이었던 데는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 주력산업 경기 순환 폭이 큰 데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했다는 이유가 있다. ‘배당을 늘리면 대주주가 부당이익을 챙긴다’며 삐딱하게 보는 시선도 건전한 배당문화 조성을 가로막았다.

배당을 늘리길 원한다면 기업이 자발적으로 배당을 확대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 역사는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되풀이된다고 했다. 지난 세기에 이미 증명된 ‘실패의 길’을 반복하는 것은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김동욱 증권부 차장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