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공공성 기대할 수 없는 KBS
김삿갓이 어느 날 잔칫집에서 축시(祝詩)를 지어주고 밥을 얻어먹게 돼 붓을 잡았다.

‘膝下七子皆盜賊(슬하칠자개도적·슬하 일곱 아들이 모두 도둑놈이네)’

주인과 일곱 아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분노할 때 상 위의 복숭아를 흘낏 본 김삿갓의 붓이 휘날린다.

‘取天桃善奉養(절취천도선봉양·천도복숭아를 훔쳐 잘도 아비를 봉양하는고)’

이 명시(名詩)에 주인이 머리방아 찧어 절하고 김삿갓을 지극정성 모신 것은 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KBS라면 ‘슬하칠자 도둑놈’이란 절구만 벽에 붙여 천하에 몹쓸 글쟁이라는 선전거리로 만들었을 것이다.

윗글은 전에 KBS 보도국장을 지낸 한 언론인이 문창극 왜곡보도를 비탄해 쓴 비유를 소개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KBS는 이 보도로 대소동을 일으키고 총리 후보를 낙마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MBC가 문제된 강연 내용을 모두 보도해 이제 세상이 다 KBS의 작태를 알게 됐지만 KBS는 아직 직원 누구도 한마디 비판을 못하는 노조왕국이다. 오히려 최근 문창극 검증보도로 KBS 기자 5명이 방송기자협회라는 단체가 주는 ‘BJC 보도상’을 수상했다고 방영했다.

한국의 대표매체 KBS가 어떻게 이런 지경의 집단이 됐는가. KBS 노조는 전임 길환영 사장을 내쫓을 때도 문창극 때와 똑같은 일을 벌였다. 김시곤 보도국장이 “세월호 사고보다 더 많은 사람이 사망하는 교통사고 등 안전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자”고 방송국 기자들과 환담한 것을 한 기자가 ‘세월호 희생자 수는 교통사고 사망자 수만도 못하다’는 말로 거두절미해 언론노조에 흘려 유족들이 KBS와 청와대로 몰려가는 사달이 났다. 이후 궁지에 몰린 보도국장이 난데없이 보도본부 독립성을 침해한 길 사장도 같이 사퇴해야 한다는 기자회견을 벌였다. 자신이 1년4개월 보도국장을 하는 동안 수없이 사장을 통해 청와대의 부탁을 넘겨받았다는 것이다.

도대체 KBS 같은 공영방송사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청와대를 비롯해 모든 정부조직에는 국민에게 알리고 해명할 ‘홍보업무’가 존재한다. 이들은 KBS 말고도 모든 매체에 홍보협조 요청을 하고 매체들은 이런 요청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 세월호 사고 수습에 청와대는 무절제하고 선동적인 해경 비난 같은 보도를 자제해 달라는 요청을 당연히 해야 한다.

따라서 공영방송사 KBS 사장의 본 직분은 보도본부 일을 바로잡는 것이다. 노조 마음대로 뉴스, 보도, 다큐멘터리를 만들도록 방치하는 사장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보도본부장의 직무도 마찬가지다. 김 국장이 이런 청와대 협조행위를 부당하다고 생각했다면 왜 1년4개월 동안 묵인하다가 이제 소동을 부리는가. 이렇게 천지분간 못하는 노조·본부장이 바로 KBS를 움직이는 주체인 것이다.

과거 MBC 노조가 장장 170일간 파업할 때 이명박 정부는 김재철 사장에게 끝까지 처리를 맡겼다. 그는 사장직을 걸고 죽기 살기로 파업노조와 대결해 사실상 노조의 백기투항을 이끌어냈다. MBC 경우처럼 억대 연봉 ‘웰빙직’들의 명분 없는 파업은 언제든 동력을 상실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정권은 KBS 파업이 시작되기 무섭게 이사회를 열고 여당 추천이사 3명이 손들어 길 사장을 해임시켰다. 정권이 이렇게 노조파업에 납작 엎드려 사장을 갈아치우는 마당에 KBS 노조의 앞길이 어찌 호호탕탕하지 않겠는가.

KBS 새 사장으로는 언론노조가 ‘절대불가’로 점찍은 고대영·홍성규 후보를 제치고 4명 야당 추천이사들이 몰표로 지지한 조대현 후보가 뽑혔다. 조 사장은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 간첩혐의자 송두율 미화, KAL기 폭파사건 조작의혹 제기 등 많은 친좌파 특집 프로가 의도적으로 제작·방영되던 노무현 정부-정연주 사장 시절 교양국장 기획다큐팀장 등 기획·제작의 책임자직에 있었다고 한다.

이런 KBS에 향후 무슨 공공성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정부가 이를 시정할 수 없다면 그간 이 웰빙 노조집단에 바보처럼 시청료를 꼬박꼬박 바치고 속을 끓여온 수천만 시민들이 이제 행동을 시작할 때가 아닌가.

김영봉 < 세종대 경제학 석좌교수 kimyb5492@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