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中企적합업종 틀 바꿀 때다
얼마 전 중소기업 대표 두 분이 신문사로 찾아왔다. 두 회사 모두 데스크톱PC를 만들어 대기업에 납품하고 있다. 이른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다. 한때 잘나가던 이들은 지난해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소기업자 간 경쟁 제품에 데스크톱PC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중기 간 경쟁제도는 중소기업 판로 보장을 위해 공공조달 시장에서 대기업 참여를 제한하는 제도다. 대기업들이 공공조달 시장에서 방출되며 납품 중소기업이 고스란히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A사 대표는 “중소기업 PC업체만 중소기업이고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은 중소기업이 아니냐”며 “중기 살린다며 다른 중기를 잡는 제도는 손질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 긋기 보호정책 한계

억울하지만 이들 업체만 시장을 포기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2013년 기준 공공조달 시장에 참여하는 데스크톱PC 제조 중소기업은 22개사다. 삼보컴퓨터와 에이텍, 대우루컴즈, 주연테크 등 상위 4개사 비중이 전체 중소기업 납품 물량의 87%를 차지한다. 대기업이 빠져나가면 이들이 시장을 과점하게 된다. 매출 4조원이었다가 구조조정 등으로 덩치가 줄어 중소기업 지위를 회복한 삼보컴퓨터 비중은 38.9%에 달한다. 1위 삼보가 혼자 40% 가까운 시장을 차지하게 된다. 다시 삼보를 규제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셈이다.

현재 중소기업 보호정책의 기본 틀은 ‘선 긋기’다. 대기업이 넘어오지 못하게 선을 그어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보호해 준다. 그러나 데스크톱PC 시장에서 보듯 한 번의 ‘선 긋기’는 또 다른 ‘선 긋기’를 필요로 한다.

민간 자율이라고 하지만 ‘중기 적합업종(또는 품목) 지정제도’도 마찬가지다. 세탁비누, 판두부, 재생타이어가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후 벌어지고 있는 일도 데스크톱PC 조달 시장 상황과 다르지 않다.

해법은 없을까. 마침 논의를 시작할 적절한 시점이다. 첫 중기 적합업종 지정 품목의 유효기간(3년)이 오는 9월 끝난다. 제도 개선 여부를 놓고 논의가 한창이다. 중기 간 경쟁제도 역시 같은 메커니즘이어서 적합업종 문제를 풀면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윈윈 방식으로 해법 찾아야

일단 제도의 ‘전격 폐지’나 ‘법제화를 통한 강화’ 등의 극단적 해법은 논의에서 제외하자. 실마리는 있다. 사석에서 만난 중기 대표들은 “선 긋기 정책은 중소기업을 연명시켜 줄 수는 있지만 경쟁력을 주지는 못한다”며 “대안이 마련되면 이 제도는 폐지가 맞다”고 말한다. 대기업 측 관계자들도 “무분별하게 (중기) 시장에 진출한 측면은 인정하지만 대기업을 죄인처럼 몰아내면 중소기업에도 좋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양측 모두 현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문제는 ‘어떻게 풀 것인가’이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선을 긋고 상대방을 몰아내 시장 규모를 위축시키기보다 경쟁과 상생을 통해 파이를 키우는 방식이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중기 적합업종’을 ‘대·중기 상생업종’으로 이름을 바꾸고, 중기와 상생협력하는 대기업에 시장을 개방하는 쪽으로 제도의 틀을 완전히 바꾸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원하는 것은 ‘마이너스 섬’이나 ‘제로 섬’ 게임이 아니라 ‘윈윈’ 게임이다. 양측이 신뢰를 갖고 대화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박수진 중소기업부 차장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