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늙어 쇠하자
[천자칼럼] 젊은 피
신하들은 어린 처녀를 품고 자면 정기를 되찾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슈넴 지방에 사는 아비삭을 데려와 동침하게 했다. 구약성서 열왕기에 나오는 얘기다. 여기에서 ‘슈넴의 여자’를 뜻하는 슈네미티즘(shunammitism)이 유래했다. 동양에서도 소음동침(少陰同寢)이라 해서 14세 이전 소녀를 품으면 젊어진다고 했다.

그리스·로마시대에는 전사한 젊은 검투사의 피를 마셨다. 참수당한 죄인의 목에서 솟는 피를 받기 위해 사람들이 처형장으로 몰려들기도 했다. 죽어가는 어미의 입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넣어준 우리의 효자전설 또한 같은 이치다. 노인이 아이의 모습을 되찾는 반로환동(返老還童)은 동서양 모두의 꿈이었다.

15세기에는 건강한 사람의 피를 직접 몸 속으로 주입하는 수혈 방식이 등장했다. 교황 이노센티우스 8세가 죽기 전에 소년 3명의 피를 수혈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북한 김일성도 만수무강연구소 생명연장팀으로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젊은 남성의 피를 받았다고 한다. 이 같은 ‘피갈이’는 한때 부유한 노년층에서 유행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어떤 효과가 있는지를 설명할 수 없었다.

1950년대 코넬대 연구진이 젊은 쥐와 늙은 쥐의 옆구리를 접합해 피를 통하게 한 뒤 늙은 쥐의 연골이 젊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젊은 피의 특정물질(GDF11)이 늙은 쥐의 줄기세포를 깨워 새로운 세포를 만든다는 사실은 불과 몇 년 전에야 밝혀졌다. GDF11 단백질은 사람에게도 있다.

엊그제 ‘젊은 피가 회춘의 열쇠’라는 것을 입증하는 연구논문이 세 편이나 공개됐다. 하버드의대 연구진이 젊은 쥐의 피에서 채취한 단백질 GDF11을 늙은 쥐에게 투여했더니 악력이 세지고 운동신경도 좋아졌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뇌속 혈관이 늘어나고 후각까지 민감해졌다고 한다. 미국 UC 샌프란시스코 의대도 인간의 20대에 해당하는 쥐의 피를 60대 쥐에게 반복적으로 투여한 결과 기억력을 관장하는 뇌의 해마 기능이 활발해졌다고 한다.

이쯤 되면 영원히 늙지 않는 ‘뱀파이어 치료법’이라도 나오는 것일까. 그러나 피는 인공적으로 바꾸어도 혈관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다고 한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젊은 피’란 사람의 생각이나 조직 구성원을 젊게 바꾸는 것, 미래를 향한 청년들의 활동을 모두 상징한다. 경제 분야나 스포츠계, 연예계 할것없이 어디든 젊은피가 돌아야 혈이 막히지 않고 혈관도 건강해진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