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 짧아진 슈퍼리치…단기상품에 5조 몰렸다
지난해 10월 만기(2년)가 돌아온 은행 예금 3억여원을 찾은 자영업자 김세영 씨(58)는 예전과 달리 재예치를 포기했다. 다시 가입할 때 이자가 2년 전 은행에서 제시한 금리(연 4.2%)보다 1.4%포인트나 낮았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가 된 탓에 이자소득세(15.4%)와 물가상승률(2.3%·한국은행 예상치)을 빼고 나면 사실상 마이너스 수익이 날 것이란 판단이 앞섰다.

김씨는 대신 만기 도래한 예금을 지난해 11월 3개월 만기 건설사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에 투자하는 특정금전신탁에 넣었다. 올 1월 연 3.4%의 이자를 챙기고 이 돈을 찾은 그는 다시 3개월짜리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하는 신탁에 자금을 맡겼다. 지난달 연 3.5%의 수익을 얻고 자금을 뺀 뒤 최근 같은 상품에 다시 3개월 만기로 재가입했다.

저금리가 장기화하면서 단기 고수익 상품을 골라 ‘이자 쇼핑’하듯 적극적으로 돈을 굴리는 사람들이 급증했다. 만기가 3~6개월 정도로 짧으면서 은행 예금보다 금리가 높은 상품을 연속적으로 갈아탄다고 해서 ‘풍차 돌리기’란 용어가 만들어질 정도다.

최근 부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단기 상품의 특징은 ‘만기 3개월, 수익률 연 3.5%’ 정도로 요약된다. 이런 조건에 근접한 환매조건부채권(RP), ABCP와 만기를 짧게 설정한 신용연계형 파생결합증권(DLS), 지수연계형 ELS, 위안화(RMB) 예금 등이 ‘단기 고금리 5총사’로 부상했다. 이들은 대부분 사모 방식으로 모집돼 특정금전신탁 형태로 팔리고 있다. 특정금전신탁 잔액은 작년 말 76조3266억원에서 지난달 28일 81조3899억원으로 4개월 동안 5조633억원 불어났다.

이형일 하나은행 PB본부장은 “금리가 연 4~5%를 웃돌던 시절과 연 2%대로 낮아진 지금 0.1%포인트에 대한 민감도는 크게 차이 난다”며 “3개월 안팎의 짧은 기간에 확정 이자를 얻을 수 있는 상품 위주로 자금을 돌리는 현상이 뚜렷하다”고 전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