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한국엔 스탠퍼드 왜 없나
미국 서부의 명문 스탠퍼드대의 올해 신입생 합격률은 5.07%다. 원서를 낸 20명(대부분 고교 1등) 중 한 명꼴로 입학할 수 있다. 2위 하버드대(5.9%)는 물론이고 예일대(6.3%), 컬럼비아대(6.9%), 매사추세츠공대(MIT·7.7%) 등을 앞선다.

지난달 12일 유에스뉴스앤드월드리포트가 발표한 2015년 경영대학원(MBA) 순위에서도 스탠퍼드대는 하버드대, 펜실베이니아대와 함께 1위였다. 그렇지만 졸업 후 평균 연봉은 스탠퍼드대가 12만5600달러로 가장 높았다.

창의 창업을 가르치는 스탠퍼드

지난해 1월 기자가 찾은 스탠퍼드대 MBA 패터슨101 강의실. ‘벤처 만들기’ 강좌를 듣는 학생 20여명이 모였다. 스타트업(신생기업) 일곱 개를 세운 데니스 로한 교수가 창업 과정을 가르치는 강의다. 수강하려면 4~5명씩 팀을 짜야 하고 아이디어를 제출해 허락을 받아야 한다. 수업은 두 학기 동안 이뤄진다.

겨울 학기(1~3월)엔 시장조사를 해서 아이디어를 사업모델로 다듬는다. 중간고사는 시장조사보고서, 기말고사는 상품기획서로 평가한다. 봄 학기엔 전략을 만들고 자본 유치 계획을 세운다. 중간고사는 사업모델 발표, 기말시험은 벤처캐피털 관계자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가장 많은 돈을 끌어낸 팀이 높은 학점을 얻는 식이다.

스탠퍼드대엔 이런 창업 관련 강좌가 유난히 많다. 시에라벤처스의 창업자 피터 웬델 교수는 23년째 MBA에서 ‘기업가정신과 벤처캐피털’ 강의를 하고 있다. 2012년 강의에는 에릭 슈밋 전 구글 회장도 공동 교수로 나서기도 했다. 잭 헤너시 스탠퍼드대 총장은 구글 시스코의 이사회 멤버이며, 제임스 플러머 공대 학장은 인텔 이사회에 참석한다.

이렇게 배운 학생들은 실리콘밸리로 나가 창업한다. 1939년 졸업생인 빌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가 휴렛팩커드(HP)를 세운 것을 시작으로 스콧 맥닐리와 비노드 코슬라는 썬마이크로시스템즈(1982)를, 레오나드 보색과 샌디 러너는 시스코시스템스(1984)를 세웠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구글(1998)을 만들었고, 제리양은 야후(1994)를 세웠다.

하버드 따라잡으려 차별화

테슬라의 엘론 머스크, 넷플릭스 창업자인 리드 헤이스팅스도 동문이다. 대학 측에 따르면 1930년 이후 동문이 세운 기업은 3만9900개사로 2011년 2조7000억달러의 매출을 창출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보다 배 이상 많다.

스탠퍼드대는 대륙횡단철도 소유주이던 릴랜드 스탠퍼드가 1891년 캘리포니아주 팰러앨토에 설립했다. 1636년에 세워진 하버드대보다 355년 늦게, 서부 ‘깡촌’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런데도 성공을 거둔 요인은 뭘까. 매트 하비 테크놀로지벤처프로그램(STVP) 담당 교수는 “서부의 신생대학인 스탠퍼드대가 하버드대 등 아이비리그 대학을 따라잡으려면 차별화가 필요했다. 다행히 스탠퍼드대는 서부에 있어 아시아 등에서 몰려오는 인재를 유치할 수 있었고, 서부개척 때와 같은 진취적 문화가 있었다. 다양성 진취성을 통해 학생들은 기업가정신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천편일률적인 대학 교육 속에 취업 재수생이 100만명에 육박한다는 소식에 스탠퍼드대를 찾았던 일이 떠올랐다.

김현석 산업부 차장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