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세계 1등 석유품질의 명암
지난해 국내에서 팔린 경유의 6%는 수입산이다. 운송비가 적게 드는 일본에서 많이 들여온다. 주요 유통 경로는 가격을 낮춘 알뜰주유소다. 수입 석유에 대한 관세면제 혜택이 끝난 작년 6월 말 이후에도 꾸준하게 들어오고 있다. 반면 지난해 수입 휘발유 비중은 2%대에 그쳤다. 작년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5개월 연속으로 수입 실적은 아예 제로(0)다.

각 국가는 석유 제품에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 기준을 요구한다. 경유는 국가마다 편차가 크지 않아 수출입에 별 문제가 없다. 휘발유는 사정이 다르다. 한국의 휘발유 품질 기준은 주요국과 비교해 상당히 높다. 우선 항목 수가 21개로 일본(20개), 유럽연합(EU·18개), 미국(14개), 호주(8개)보다 많다. 휘발유에 들어 있는 메탄올 성분이 무게의 0.1%를 넘으면 안 된다. 일본(0.5% 이하) 미국(1.8~3.5%) EU(3% 이하)보다 훨씬 엄격하다.

5개월째 휘발유 수입 없어

벤젠 성분도 마찬가지다. 일본 등 대부분 국가들은 벤젠 함량이 휘발유의 1% 이하면 판매를 허락하지만 국내에선 0.7% 아래로 낮춰야 한다. 휘발유 함량의 90% 이상을 증류하는 데 필요한 온도인 증류성상 90% 유출온도 기준도 미국(190도 이하) 일본(180도 이하)보다 낮은 170도로 제한해 더 까다롭다. 국내 소비자들이 수입 휘발유를 구경하기 어려운 이유다. 국내 기준에 맞추려고 첨가물을 섞고 공정을 추가하다 보면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 기준은 수입사뿐 아니라 국내 정유업계에도 부담이다. 해마다 높아지는 엄격한 기준을 맞추려면 막대한 시설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 정제 마진이 줄고 있는데 정부의 요구 강도가 더 세지고 있어 업계에선 불만이 적지 않다.

규제도 수준 따져봐야

환경부는 4대 정유사와 3대 수입사를 대상으로 1년에 두 차례 수도권에서 판매하는 자동차용 휘발유와 경유의 품질을 평가해 공개한다. 올 하반기부터는 평가와 공개 주기가 월 단위로 바뀐다. 게다가 별 숫자로 표시하던 등급을 소수점 한 자리 점수까지 함께 명시하기로 했다. 석유 품질이 나날이 좋아지면서 회사별로 차이가 미미해 별 등급 체계로는 품질이 얼마나 다른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 제도 변경의 이유다.

환경부가 최근 내놓은 국내 정유사와 수입사 등 7개 회사의 지난해 하반기 경유 품질은 최고 등급인 별 5개다. 휘발유는 국내 정유사 모두 별 4개를 받았다. 국내 기준을 충족시켜 판매에 문제가 없는 수준은 별 1개다. 별 4개는 국제 최고 수준이다. 정유사의 경유 품질은 등급제를 도입한 2006년 하반기부터 7년 연속 별 5개다. 환경부는 내년 1월 휘발유의 방향족화합물 상한선(부피 기준)을 현재 24%에서 22%로 다시 낮출 계획이다. 호주 허용치(45%)의 절반 이하다. 고집에 가까운 정부의 의지가 느껴질 정도다.

석유제품은 3년째 한국의 수출 1위 품목이다. 48개국으로 수출되는 한국의 휘발유와 경유는 이미 고품질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1년에 두 번도 모자라 매월 점수까지 공개해 얻을 수 있는 정책 효과가 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글로벌 기준보다도 엄격한 규제야말로 ‘암 덩어리’로 커질 수 있는 종양이다.

박해영 산업부 차장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