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가 어제 10대그룹 인사담당 임원들과 간담회를 열고 ‘스펙 초월 채용’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적극 나서줄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입사지원서에 기업 인재상, 직무역량 평가에 필요한 정보 이상의 불필요한 스펙을 가려내 과감히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다. 특히 관행적으로 요구해온 사진, 가족관계, 신체조건 등부터 먼저 없애달라는 것이다. 또한 100대 기업 입사지원서의 스펙 기재사항을 조사·분석해 발표하겠다고도 한다. 형식은 요청이지만 기업들로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주문이다.

대학생들이 스펙 쌓기에 쏟는 시간·노력·비용은 이루 헤아리기 힘들다. 소위 취업 7종 세트를 구비하는 데 4년간 4269만원, 대학 등록금을 빼도 1467만원이 든다는 조사도 있다. 청년들이 그토록 스펙을 쌓는데도 기업들은 대졸 신입사원 교육에 평균 18개월 동안 1인당 6000만원을 쓴다.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고, 스펙 망국론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현실은 또 다르다. 능력을 중시해 뽑고 싶은 심정이야 기업들이 더 굴뚝 같다. 스펙 무용론은 정부나 청년들보다 창의적 인재 찾기에 골몰하는 기업들이 더 심각하게 고민해온 문제다. 대학은 학점 뻥튀기가 공공연하고, 토익 900점짜리가 영어 자기소개서 한 줄 변변히 못 쓰는 형편이다. 이런 스펙만 믿고 선뜻 채용할 기업이 과연 있겠는가.

문제는 스펙 초월 채용이 과연 군비경쟁과도 같은 스펙 경쟁을 누그러뜨릴 대안이 될 수 있느냐다. 채용기준을 다양화한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취업문이 바늘구멍인 이상 스펙을 안 본다고 취업전쟁이 달라지진 않는다. 대입 수시전형이 늘수록 수시와 정시 모두 어려워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은행 공기업에서 스펙 초월 채용이 확산되고 있다지만, 청년들에겐 또 다른 스펙으로 인식되는 이유다. 청년위 요청대로 입사지원서에서 이런 것 저런 것 다 빼고나면 지원자 이름과 연락처 말고 뭐가 남을지 의문이다. 종국엔 추첨하자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지 모르겠다. 채용방식은 기업에 맡기면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