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이런 정치로는 통일 못한다
지난주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은 대북정책의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북한이 핵폭탄을 포기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없다. 이날 선언이 단순한 평화공세처럼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가 평화를 말할수록 북한은 핵폭탄에 대한 집착 강도를 높인다. 북한이 핵무기를 소형화·전술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향후 3년여 동안도 딜레마는 계속된다. 북한의 공갈이 강화될수록 당근은 풍성해진다. 어제 북한이 다시 백령도 방향으로 포사격을 해대는 것은 드레스덴 선언에 대한 자연스런 반응이다. 북한은 늘 그렇게 잘못된 행동에 보상받아 왔었다.

“봐라, 남측이 더 많은 것을 약속하지 않느냐”는 확신이야말로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선택지를 제한해왔다. “맛좀 봐야 알간?”이라는 김정일의 계산된 반응이 천안함 사건을 일으켰다고 봐야 할 정황 증거는 많다. 체제 안전이 우선이고 그 다음이 경제 협력이다. 핵폭탄 문제에는 절충점이나 중도노선이 없다. 독재정권은 협상 상대가 아니라는 점, 대북 지원은 없다는 점을 확고히 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한국의 지배 전략이 아닐지….

마치 조폭에게 그런 것처럼 돈을 점점 더 많이 퍼주면서 평화를 구걸할 것인가. 결국 이 질문은 영구 분단을 용인할 것인가 하는 말로 정확하게 치환된다. 독재 정권을 인정할 수 없는 사람은 영구분단을 받아들일 수도 없다. 이런 사람이 통일세력이다. 반면 정권의 정당성 여부는 묻지 않겠다는 사람도 많다. 이들은 “전쟁의 없음이 곧 평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며 민족화해 등의 이름으로 북한과의 공존을 수용한다. 이들 중 일부는 연방제라는 이름 아래 북한 정권을 합법화해주자는 주장도 편다. 이들은 결과적으로 반통일 세력으로 작용한다.

통일의 명분과 실질을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 일부는 종북 깃발을 내리고 화해와 공존으로 말을 갈아탄 지 오래다. 그렇게 소위 민주화 진영이야말로 통일 의지를 의심받고 있다. 공존과 통일은 엄연히 다르다. 통일은 어떤 경우라도 북한 정권의 붕괴를 동반하게 된다. 남북 평화체제가 정착되면 자유총선거에 의해 통일정부를 구성할 것이라는 생각은 순진한 것이 아니라 지적 속임수다. 북한 정권은 자유총선거 따위와 공존할 수 없다. 유엔이 김정은을 범죄자로 선언한 것이 이 점을 명확하게 설명해준다.

지금의 국내 정치로는 통일이 불가능하다. 통일을 원치 않는 세력도 많다. 6·15와 10·4 성명을 받들자는 세력은 반통일 세력으로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연방제 비슷한 것이라도 받아들이자는 자는 자유로운 체제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다. 통일은 마지막 순간에 극도의 긴장국면을 맞는다. 단말마적 전쟁공갈도 극에 달할 것이므로 대한민국 내부에 공포감에 사로잡힌 다수의 국민들과 정치세력이 출현할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물론 그 시기는 확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다. 지금도 스톡홀름신드롬에 사로잡혔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소위 공존론자들이 적지않다. 이들은 마지막 국면에서 극도의 히스테리에 빠질 것이다. 결국 통일 결단을 지연시키거나 정치 혼란을 조성하게 된다.

통일대박을 준비하는 박근혜 정부가 할 일은 공허한 당근책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다. 국내 정치에 스며든 무분별한 공존론을 일축하고 그들이 용기를 가진 자들 편에 설 수 있도록 끌어안아야 한다. 혹자는 북한의 생활수준을 끌어올려야 통일비용이 줄어들 것이라는 말 같지 않은 소리를 떠든다. 그러나 역사상 대등한 통일이나 통합 따위는 있어본 적이 없다. 대북지원이 주민 생활을 개선할 것이라는 기대도 허망하다. 주체사상으로 경제를 개선할 가능성은 제로다. 박 대통령에게는 대북지원이 아니라 통일을 위한 내부 체제정비가 더 시급하다.

대북지원은 철저하게 조건부라야 한다. 비료 몇 톤이라면 정치범 수용소 2개소 폐쇄 등이 구체적으로 연계되어야 한다. 식량 수 톤이면 평성시장 자유화, 나진 개발권 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래야 북한이 바뀐다.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