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가고 싶다, 島島 한 그대! 속살을 보여주오
섬에서 느끼는 봄은 육지보다 더 생명력 있는 것 같다. 훈풍이 불어오는 섬을 돌아보면무르익은 봄 향기가 진하게 몰려온다. 섬에서 맞는 봄은 찰나의 빛처럼 짧다. 4월 봄의왕성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섬여행을남쪽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제주 가파도

봄이면 섬은 온통 청보리 물결이다. 무려 56만1000㎡의 들판에 청보리가 출렁인다. 유채와 갯무 꽃도 지천으로 핀다. 보리밭 사이 길을 걷다 보면 여행자는 시간여행을 떠나온 듯한 환상에 사로잡힌다. 제주 섬 속의 섬 가파도는 최고점이 20.5m에 불과할 정도로 낮다. 바다와 거의 수평에 가까운 섬이 파도에 쓸려가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그토록 낮은 섬이지만 가파도에서는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아왔다. 그래서 왕돌이라 부르는 고인돌이 135기나 남아 있다. 오름이나 봉이 아니라 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제주의 산은 모두 7개다. 가파도에서는 영주산만 빼고 한라산, 산방산, 송악산, 군산, 고근산, 단산 등 6개의 산을 모두 볼 수 있다.
'바람이 더한다'는 뜻을 가진 가파도는 봄이면 청보리의 물결에 뒤덮인다.
'바람이 더한다'는 뜻을 가진 가파도는 봄이면 청보리의 물결에 뒤덮인다.
낮은 섬답게 가파도에는 높은 건물이 없다. 주민들은 2층 이상의 건물을 짓지 않기로 스스로 결의했다. 그러니 가파도는 섬의 어느 지점에서도 바다를 볼 수 있어 눈이 시원하다. 섬은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이면 족할 정도로 작다. 조금이라도 청보리밭에 더 오래 머물고 싶다면 가파도에서는 달팽이처럼 느리게 걸어야 한다.
전남 신안군에 있는 안좌도 김양식장.
전남 신안군에 있는 안좌도 김양식장.
신안 안좌도

신안의 안좌도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로 유명한 수화 김환기 화백의 고향이다. 읍동리에는 수화가 살던 기와집이 남아 있다. 키가 컸던 수화는 목도 길었다. 누군가 왜 그렇게 목이 기냐고 묻자 자신은 섬사람이라 육지가 그리워 목을 뺐더니 길어지고 말았다고 대답했다 한다. 수화처럼 섬사람들은 늘 뭍을 그리워한다. 안좌도의 대리 마을입구에는 60여그루의 팽나무 고목들이 도열해 마을을 지키고 있다. 400년 전에 조성된 방풍림이다.
그 섬에 가고 싶다, 島島 한 그대! 속살을 보여주오

두 개의 남근석도 마을 지킴이다. 정확히는 마을의 여자 지킴이다. 오래전 이 마을 여자들은 바람이 잘 나기로 유명했다. 마을 뒷산 여근석이 바람기의 원인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여근석 앞에 소나무를 심어서 가리고 마을 입구에 남근석 두 기를 세웠다. 안좌도 곳곳에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인 고인돌과 백제 석실고분들이 산재해 있다. 안좌도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천사의 다리’에 있다.

안좌도 두리 마을과 박지도, 반월도 두 작은 섬을 연결하는 다리는 자동차는 다닐 수 없는 인도교인데 이 다리가 ‘천사의 다리’다. 안좌도와 박지도까지, 또 박지도에서 반월도까지 왕복 3㎞ 바다 위를 걸어서 건넌다. 해상에서 천상을 엿볼 수 있으니 그야말로 기적의 다리다. 평탄하게 이어지는 박지도 해안 둘레길(4㎞)이나 반월도 당숲은 덤이다.
대청도 농여해변과 미아동해변의 경계에 있는 기암괴석.
대청도 농여해변과 미아동해변의 경계에 있는 기암괴석.
인천 대청도·소청도


역사왜곡 논란 속에서도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기황후’ 속 기승냥의 남편이자 원나라 마지막 황제인 순제(順帝) 토곤 테무르(타환)의 흔적이 이 땅에도 남아 있다. 즉위하기 전 타환이 1년5개월간 고려로 유배당한 곳이 바로 대청도다. ‘택리지’에 그 기록이 있다. “원나라 문종(文宗)이 순제를 대청도로 귀양 보낸 일이 있었다. 순제는 집을 짓고 살면서 순금 부처 하나를 봉안하고 매일 해 돋을 때마다 고국에 돌아가게 되기를 기도하였는데, 얼마 후 돌아가서 등극하였다.”

대청도는 서해의 마지막 보석 같은 섬이다. 옥죽포에는 모래사막이 있고 미아 농여 해변은 흰 모래와 기암괴석으로 가득한 비경이다. 선진포구 검은낭 해변 절벽을 따라서 난 해안길은 천국의 계단을 오르는 듯 황홀한 하늘길이다. 사탄동 해변의 솔숲도 고즈넉하기 이를 데 없다. 대청도 가는 길에는 바로 곁의 소청도를 꼭 들러야만 한다.

대리암이 해식작용으로 풍화된 소청도 분바위.
대리암이 해식작용으로 풍화된 소청도 분바위.
소청도의 명물은 ‘분바위’와 등대다. 분바위는 대리암 덩어리다. 대리암 표면이 풍화돼 분칠한 것처럼 보여 분바위란 이름을 얻었다. 분바위 곁에는 남조류의 화석 구조물인 스트로마톨라이트가 있다. 남조류는 지구에서 최초로 광합성을 시작한 원시미생물인데 소청도 화석은 10억년 전에 형성된 것이다. 생명의 기원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유적이다. 절벽 끝 등대로 가는 길은 꼭 걸어봐야 할 최고의 해상 트레일 중 하나다.
방아섬은 관매도 8경 중 하나로 선녀들이 내려와 방아를 찧었다는 전설이 있다.
방아섬은 관매도 8경 중 하나로 선녀들이 내려와 방아를 찧었다는 전설이 있다.
진도 관매도

진도 관매도의 상징은 방아섬이다. 선녀들이 내려와 방아를 찧다 올라가곤 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작은 무인도. 방아섬에는 우뚝 솟은 방아바위가 있는데 그 때문에 건너 섬 청등도 처녀들은 바람 잘 날 없었다. 선녀들은 대체 무슨 방아를 찧었던 것일까. 인근 섬 사람들은 방아바위 때문에 관매도 사람들과 혼인을 금하는 것은 물론 쳐다보는 것도 금기시했다고 한다.
석양에 물든 관매도 해변.
석양에 물든 관매도 해변.
관매도의 진짜 보물은 해안의 솔숲이다. 관매도 해수욕장을 따라 늘어선 곰솔숲은 무려 9만9000㎡나 된다. 300년 전 입도한 함씨가 방풍림으로 조성했다는데 원형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초등학교 앞의 300년 넘은 후박나무와 느릅나무들로 이뤄진 성황림 또한 귀물이다. 4월이면 장산평 마을 앞 6만6000㎡의 들판은 온통 유채꽃으로 황홀경을 이룬다.

마을 안길의 돌담도 원형 그대로다. 작은 섬마을의 집들은 대부분 대문이 없지만 집과 집 사이에 돌담은 있다. 담장은 있어도 대문이 없는 것은 경계를 정하되 경계 없이 살자는 공동체의 약속이다.
욕지도는 물이 깨끗하고 해산물이 싱싱해 맛 여행을 떠나기에도 좋다.
욕지도는 물이 깨끗하고 해산물이 싱싱해 맛 여행을 떠나기에도 좋다.
통영 욕지도

욕지도(欲知島)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통영의 섬이다. 욕지도의 뜻은 주변의 다른 섬들과 연계될 때 비로소 정확히 풀이된다. 불교 경전 속의 ‘욕지연화장두미문어세존(欲知蓮華藏頭尾問於世尊)’이라는 말에서 욕지도의 뜻은 명확히 드러난다. 연화(극락)세계를 알고자 하거든 세존(부처님)께 물어보라! 욕지도 주변의 연화도, 두미도, 세존도 등의 이름이 이 한 문장에 들어 있다. 섬에서 불국토를 꿈꾸던 이들이 경전 구절에서 가져다 이름을 붙인 것이리라. 과거 섬들이 이상향을 꿈꾸던 이들의 도피처였듯이 오늘 욕지도와 연화도 같은 섬들은 도시 사람들이 세속을 벗어나 쉬고 싶은 피안이 되었다.

욕지도에서는 산에 올라야만 이상향의 섬들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혼곡에서 산길을 따라 30분 남짓 오르면 대기봉 정상이다. 봄산은 온통 피어나는 산벚꽃 향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산정에서는 한려수도의 풍경이 산수화처럼 펼쳐진다. 천왕봉까지는 평탄한 능선길이다. 내친 김에 태고암 쪽으로 내려와 약과봉까지 걸어보라. 완만한 산책길, 약과봉에서 논골로 내려오는 길가의 편백숲 또한 평화롭다. 길은 논골에서 제암마을 산허리를 돌아 대풍암까지 이어진다.

대풍암을 내려서면 고등어파시로 명성을 떨치던 자부포다. 자부포의 명물은 ‘할매 바리스타’. 욕지도 할머니들이 내려주는 커피 한 잔은 이방의 향수를 한껏 자극한다.

대·소청도서 숙박하면 뱃삯 반값 지원해 줘요

가파도 가파민박, 바다별장민박 등에서 숙박이 가능하다. 해녀들이 직접 잡은 소라 성게 문어 등을 맛볼 수 있는데 가파도 성게는 제주에서도 최상품으로 유명하다.

안좌도 읍동의 유성모텔이나 다리로 연결된 자은도의 마리포사리조트에서 숙박 가능하다. 뻘낚지와 민어, 병어회나 장어탕이 좋다.

관매도 마을의 집들 대부분이 민박집을 친다. 피서철이 아니면 예약이 필요없다. 동네 할머니들이 담은 쑥막걸리가 일품이다.

대청, 소청도 대청도 옥죽포에 대형 숙박업소들이 밀집돼 있다. 선착장 부근에도 엄지여관을 비롯해 민박이 많다. 소청도에서는 등대펜션에서 숙박과 식사가 가능하다. 숙박을 하는 여행객에겐 인천시에서 뱃삯 50%를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다.

욕지도 수많은 펜션과 민박이 있다. 할매 바리스타의 커피와 함께 욕지도 최고의 맛은 고등어회다. 지금까지의 모든 회맛을 잊게 만든다.

강제윤 시인 (인문학습원 섬학교 교장) gilgu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