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무명 선수가 名감독 되는 이유
미국에서 시애틀 시호크스한테 사상 처음으로 ‘빈스 롬바르디(슈퍼볼 우승 트로피)’를 안긴 피트 캐럴 감독. 올해 62세로 역대 두 번째 최고령 우승 감독이다. 슈퍼볼 우승으로 명장 반열에 오른 그는 선수시절 스타플레이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체육장학생으로 대학에 들어갔지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결국 프로 무대를 밟지 못했다. 지도자 길로 방향을 틀었다. 27세 때였다. 6년간의 대학 미식축구팀 코디네이터와 10여년의 프로팀 코치를 거쳐 뉴욕 제츠 감독인 된 건 43세 때였다. 1997년엔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팀을 맡았다. 그는 두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는 수완을 발휘했지만 서부 출신(샌프란시스코)에 대한 동부의 배타적인 정서에 막혀 3년 만에 퇴출당했다.

집념·치밀한 준비, 소통이 열쇠

1년여 실업자생활을 한 캐럴이 2000년 말 맡은 팀은 프로팀이 아니었다. 만년 하위팀인 남가주대(USC)였다. 그것도 엄청난 비난 속에서였다. 그는 모든 걸 성적으로 말했다. 9년 동안 7년 연속 4대 메이저 볼에 진출해 6승을 올렸다. 10년의 절치부심 끝에 맡은 게 프로팀 시호크스였다. 그는 프로로 복귀한 지 4년 만에 정상의 꿈을 이뤘다.

월드컵 4강신화를 일궈낸 거스 히딩크도 스타는 아니었다. 그는 21세에 2부리그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축구만으로는 생계가 어려워 특수학교 체육교사로 일하는 투잡스족이었다. 그는 끝내 네덜란드 대표팀 근처에는 가보지 못했다. 히딩크는 37세에 지도자 길을 택했다.

거꾸로 스타플레이어가 감독으로 성공하지 못한 사례가 적지 않다. 최근 동부 프로미(농구) 감독을 사퇴한 이충희는 현역시절 최고 선수였다. ‘컴퓨터 슈터’였다. 12시즌 득점왕이었고 1987년 방콕 ABC대회 최우수선수였다. 감독 이충희는 달랐다. 지난해 4월 동부 감독으로 취임한 뒤 성적은 최악이었다. 리더십 시비 속에 13연패를 당했다. 결국 옷을 벗었다. 취임한 지 불과 9개월여 만이었다.

화려한 과거에 갇힌 스타들

무명 선수 출신의 성공과 스타 출신의 실패를 가르는 원인은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성공에 대한 집념과 이를 위한 치밀한 준비, 선수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이다. 감독으로 성공한 캐럴과 히딩크의 공통점이다. 캐럴은 감독이 되기까지 16년 동안 현장 코디네이터와 코치로 일하며 감독수업을 받았다. 감독직에서 쫓겨난 뒤에도 인생역전을 꿈꾸며 10여년간 묵묵히 칼을 갈았다.

히딩크의 월드컵 4강신화는 스타가 아닌 선수 개개인의 장점을 살린 팀플레이의 결과물이었다. 이를 가능케 한 건 원활한 소통이었다. 선수 개개인의 장점을 살려주고 선수들에게 골고루 기회를 주며 무한경쟁으로 이끈 히딩크에게 돌아온 건 선수들의 절대적인 신뢰였다.

스타들은 이른 성공의 덫에 걸리기 쉽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만큼 성공에 대한 열망이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 준비된 감독이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자신의 눈높이에 선수들을 맞추려 하고 스타 중심의 게임을 운영하려 하다 보니 팀플레이가 깨지기 십상이다. 소통이 안되니 불협화음이 생기는 건 당연한 결과다. 일찌감치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한 번쯤 되짚어 봄직한 대목이다.

이재창 국제부장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