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정상화' 필요한 中企정책
지방대에 다니는 A씨는 지난해 다섯 군데 창업대회에서 상을 탔다. 받은 상금만 1000만원이 넘는다. 그러나 그의 꿈은 창업이 아니다. “창업경진대회 수상 경력은 대기업에 들어갈 때 좋은 스펙이 됩니다. 창업대회에 나가면 돈도 벌고, 스펙도 쌓고 일석이조예요”라는 게 그의 얘기다. A씨는 자신과 같은 ‘대회꾼’을 여럿 알고 있다. 전국에서 벌어지는 창업대회 일정을 꿰고 있고, 받은 상금은 어떻게 세탁해서 유흥비로 쓸 수 있는지까지 알고 있는 ‘타짜’들이다.

서울 시내에 수백억원짜리 빌딩을 가진 자산가 B씨는 자칭 ‘소상공인’이다. 그는 ‘취미’로 자신의 빌딩에 스크린골프숍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도 B씨는 지난해 소상공인을 대표하는 단체를 만들겠다며 1년 내내 동분서주했다. 잘만하면 정치권으로 진출할 티켓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벼슬자리?

A씨와 B씨 사례는 시장에서 볼 수 있는 ‘비정상’의 일면일 뿐이다. 눈을 들어보면 더 심한 경우가 많다. 중소기업 범위 재지정을 둘러싼 법석도 그런 경우다. 지난해 중소기업인들은 정부가 중기 범위를 축소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벌떼처럼’ 들고 일어섰다. 중견기업이 되는 것은 축하하고 격려받아 마땅한 일인데 왜 그렇게 분노할까.

한국에서는 중소기업 ‘이름표’를 달아야 연간 13조원에 육박하는 예산을 받을 수 있고, 정부 조달시장 등에서 특혜를 받을 수 있다. 때문에 중소기업 지위는 사업의 명운을 가르는 ‘벼슬자리’ 처럼 여겨진다.

이같은 ‘비정상’을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현재 중소기업 정책의 큰 틀은 칸막이와 보호·지원이다. ‘작은 것은 약자’ ‘작은 것은 큰 것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는 인식에서 나왔다. 이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 문제 해결이 힘들다.

물론 보호와 육성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나 협동조합 납품단가 단체협상권 같은 보호제도는 대기업의 부당한 횡포를 예방하는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

“칸막이, 경쟁력에 도움 안돼”


그러나 과하면 모자란만 못한 법. 김문겸 중소기업옴부즈만은 “지나친 보호는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뿐”이라며 “중기 적합업종 같은 제도를 다시 도입한 것은 큰 실수”라고 지적했다. “좌파정권때 기업 경쟁력에 도움이 되지 않은 것으로 판명나 폐지한 제도를 적합업종이란 이름으로 재도입한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계속 칸막이를 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적합업종 대상을 확대하고, 소상공인을 위한 별도의 공공기관을 만들고, 소액 공공조달건은 별도로 소상공인에게만 할당해주는 식이다.

정부가 이러니 시장은 한술 더 뜬다. 소상공인들은 별도 단체를 만든다며 난리고, 중견기업단체는 회원사를 늘리겠다고 아우성이다.

마침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일 신년 기자 간담회에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언급했다. 비정상이 일상화된 작금의 상황을 감안하면 ‘매우’ 시의적절한 아젠다로 보인다.

정부가 이 참에 칸막이식 중소기업 보호정책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 경쟁력 강화쪽으로 정책의 큰 틀을 바꿀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했으면 한다.

박수진 중소기업부 차장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