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공매도' 부추기는 증권사
연초부터 증시가 지지부진하다. 꽁꽁 얼어붙은 투자자들의 마음은 더 움츠러들고 있다. 거래량이 급감하고 증시의 활력이 떨어지자 거래소는 주식거래 시간을 늘리자는 ‘고육지책’까지 내놨다. 언제 어디서나 휴대폰으로 거래할 수 있는 모바일 시대에 증시 개장 시간이 짧아 주식거래를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지만 오죽하면 이런 아이디어를 짜냈을까 싶다.

올해도 증시 환경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작년보다 나아질 것이란 희망 섞인 기대가 있긴 하지만 강하게 치고 올라가는 증시를 예상하는 목소리는 찾기 어렵다. 맥빠진 증시에 투자자들의 관심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한편에선 거래량 감소를 일시적 현상이 아닌 사회구조적 이유로 설명한다. 투자 리스크를 감내할 수 있는 젊은 세대는 돈이 없고, 늘어나는 은퇴 세대는 모아둔 자산을 까먹지 않기 위해 보수적으로 돈을 굴리기 때문에 주식에 투자할 ‘여윳돈’이 없다는 것이다.

일상화된 뒷북 조정

증권사들도 투자자를 증시에서 쫓아내는 데 한몫하고 있다. 장밋빛 실적 전망을 쏟아내다가 결과가 예상을 크게 벗어나 주가가 급락하면 뒤늦게 실적과 목표주가 조정에 나선다.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닌데다 애널리스트들끼리 오십보백보이다 보니 ‘뒷북치기’가 일상화된 듯하다. 짭짤한 수수료 수입 때문에 직원들에게 대주(공매도에 필요한 주식을 빌려주는 것) 영업을 독려하는 증권사도 있다고 한다. 공매도 규모가 커지면 주가는 힘을 내기 어렵다. 한쪽에선 주식을 사라고 ‘매수’ 추천을 하면서, 다른 한편에선 주가 하락을 부추기는 셈이다. 만약 대상이 시가총액 규모가 작은 코스닥시장 중소형주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많은 증권사들이 몇 년 전부터 시황만 쳐다보는 천수답식 주식영업에 의존해선 생존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자산관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요즘은 은행에 가면 각종 펀드를 비롯해 웬만한 금융상품에 다 가입할 수 있다. 그래도 굳이 증권사를 찾는 사람들은 은행에는 없는 투자상품과 ‘전문성’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투자자가 돈 벌 수 있어야

그런데 증권사들은 전문성은 고사하고, 가장 기본인 ‘고객신뢰’에서조차 많은 점수를 잃었다. 2007년 몰아닥쳤던 ‘펀드 광풍’은 여전히 상당수 투자자들에게 상처와 후유증으로 남아 있다. 2010년 이후엔 자문형랩, 브라질 국채 등 리스크 큰 상품들을 집중적으로 팔았다가 해당 상품에 큰 손실이 나면서 또다시 투자자들을 실망시켰다. 주가연계증권(ELS)은 증권사 직원들이 ‘주가가 손실구간까지 떨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안전한 상품으로 추천한 경우가 많은데, 2011년 발행된 종목형 ELS 중엔 3년 만기가 돌아오면서 반토막 난 계좌들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 동양그룹의 기업어음(CP)과 회사채 사태는 증권업계 전체의 신뢰성에 치명타를 날렸다.

연초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은 신년사와 인터뷰에서 ‘고객 신뢰’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거꾸로 얘기하면 투자자들의 신뢰가 그만큼 무너졌다는 뜻이다. 신뢰는 단숨에 회복되지 않는다. 증권사들이 실력을 키우고, 좋은 투자처를 발굴하고, 그래서 투자자들에게 ‘내 돈을 맡겼더니 불려주더라’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한다.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면 떠나는 투자자를 붙잡을 수 없다.

박성완 증권부 차장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