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朴 대통령의 첫 기자회견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지난 10개월간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마주한 적은 딱 두 번이다. 지난해 3월4일 국회의 정부조직법 처리를 촉구하는 대국민 담화문 발표가 첫 번째다. 하지만 기자들과 질의응답 없이 담화문만 읽고 퇴장했다. 두 번째는 지난해 여름,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기자단 오찬 행사였다. 당시 상당수 기자들은 취임 기자회견이 없었던 만큼 공식 간담회를 원했지만, 그냥 야외에 차려진 점심을 먹으면서 가벼운 농담 몇 마디 오가고, 대통령과 기념사진 찍는 것으로 행사는 끝났다.

짜고치는 고스톱 바꿔야

사정이 이러니 대통령의 생각을 알고 싶어도 참모들한테 전해 듣는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대통령의 의중을 얘기해주는 참모는 이정현 홍보수석, 조원동 경제수석 등 몇 안 된다. 기자들이 현안에 대해 대통령 육성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자리는 수석비서관회의나 국무회의가 열릴 때다. 하지만 기자단을 대표해 번갈아 들어가는 풀 기자 한두 명이 회의장 구석에 앉아 대통령의 모두발언만 받아 적고 나오는 게 전부다.

이런 상황에서 갑오년 새해에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연다고 하니, 기자들의 기대감이 클 수밖에…. 기왕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으니, 방식부터 바꿔보면 어떨까 싶다. 우리나라 대통령 기자회견은 일종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딱딱한 분위기에서 기자들은 사전에 조율된 질문을 던지고, 대통령은 참모들이 준비한 답변만 한다. 노무현 정부 초기를 제외하곤 역대 정부마다 그러지 않은 적이 없었다.

미국의 경우는 어떨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후 매달 평균 두 차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가진 지난해 12월20일 기자회견 장면을 보자.

“올해가 오바마 임기 중 최악의 해라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오바마케어에 대해 너무 자주 말 바꾸기 한 것 아니냐”와 같은 각본 없는 송곳 질문들이 쏟아졌고, 답변이 부실하면 후속 질문이 집요하게 꼬리를 물었다. 이에 맞서 오바마는 특유의 농담을 섞어가며 능숙하게 받아치면서 대통령과 기자단 간의 설전(舌戰)이 1시간 내내 이어졌다.

부러운 외국 대통령 기자회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9일 송년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무려 4시간 넘게 진행했다. 1000여명이 넘는 내외신 기자가 참석해 수십 개에 달하는 질문을 쏟아냈다.

다음주 예정된 박 대통령의 첫 기자회견은 이런 각본 없는 즉석 회견이 됐으면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역대 대통령들의 기자회견과 형식만 달랐지 내용은 별반 다르지 않은 회견을 준비 중인 모양이다.

백악관 출입기자로 60년간 9명의 대통령을 취재해 백악관의 ‘전설’로 알려진 고(故) 헬렌 토머스 기자. 그가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 기자회견에서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진짜 이유가 뭔가. 석유인가, 이스라엘인가”라고 돌직구를 날려 부시를 더듬거리게 만든 건 유명한 일화다. 청와대 출입기자들도 “올해 국정운영 계획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죠”와 같은 사전에 조율된 상투적인 질문이 아니라 “증세 없는 복지가 불가능하다고 이제는 솔직하게 고백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식의 질문을 던지고, 이를 멋지게 받아치는 박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싶다.

정종태 정치부 차장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