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옐런의 인준 과정에서 배울 점
다음주 미국 상원에선 재닛 옐런 중앙은행(Fed) 의장 내정자에 대한 상원 전체회의 인준 투표가 실시된다. 벤 버냉키 의장의 바통을 이어받기 위한 마지막 절차다. Fed가 정하는 기준금리는 세계 각국의 금리와 환율, 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세계의 경제대통령’으로 불리는 Fed 의장 인준에 글로벌 시장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유다.

옐런의 투표 결과에 못지않게 눈길이 가는 관전 포인트는 반년 가까이 소요되는 미국의 고위 공직자에 대한 인준 과정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옐런을 차기 Fed 의장으로 공식 지명한 건 지난 10월9일. 이번 투표를 통과하면 옐런은 내년 2월부터 Fed 의장직을 수행하게 된다. 2006년 앨런 그린스펀의 뒤를 이었던 버냉키 임명 과정도 비슷했다.

'깜짝 인사' 없는 미국

공식 지명이 10월이었지만, 그에 대한 본격적인 검증이 시작된 건 지난 6월부터다. 후보자를 언론에 흘려 여론을 살피는 미국 행정부의 오랜 관행에 따른 것이다. 당시엔 옐런이 경륜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적임자로 꼽혔음에도 오바마의 신임이 두터운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에 밀리는 양상이었다. 하지만 서머스는 독선적인 성격, 월가와의 유착 등이 드러나면서 여론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매파’로 분류돼 온 그에게 세계 증권시장도 등을 돌렸다. 결국 서머스는 ‘마지못해(reluctantly)’ 석 달 만에 후보직을 자진 사퇴했다.

옐런의 지명은 오바마가 여론에 승복한 결과다. 물론 후보 지명은 첫 단추일 뿐이다. 옐런은 지난달 22일 상원 인사청문회를 통과하기까지 험난한 사전 검증을 받았다. 미 연방수사국(FBI), 국세청(IRS) 등은 인사청문회가 열리기 이전 짧게는 2~3주, 길게는 두 달 이상 탈세와 개인 비리 등 230여개 항목에 걸쳐 혹독한 검증을 실시한다.

결격 사유가 발견되는 후보자들은 대부분 이 단계에서 탈락한다. ‘후보자의 무덤’으로 불릴 정도다. 1993년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이 법무장관 후보로 지명한 조 베어드는 의회 청문회 직전 페루 국적의 불법체류자를 가정부로 고용한 사실이 드러나 낙마했다. 이렇다 보니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는 주로 정책 검증에 초점이 맞춰진다.

'후진적 인사' 벗어나야

미국 인사시스템의 요체는 장기간에 걸친 혹독한 검증과 반대 여론을 흔쾌히 수용하는 백악관의 포용력이 어우러진 하모니다. ‘밀봉 인사’ ‘임명 강행’과 같은 민망한 단어가 등장할 여지는 없다. ‘깜짝 인사’로 검증과정이 짧다 보니 청문회에서 정책보다는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등 ‘인격 청문회’가 되풀이되는 한국과 크게 다른 점이다.

때마침 한국은행 총재 임기도 내년 3월이면 끝난다. 한은법 개정으로 차기 총재는 인사청문회도 거쳐야 한다. 단명(短命)에 그치는 장관 등과 달리 4년 임기가 보장되는 한은 총재 후보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갈수록 비중이 커지는 중앙은행의 역할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복지 확대, 재원 부족 등으로 재정정책의 폭이 좁아진 상황인 만큼 통화정책 책임자의 어깨가 무거운 터다.

적임자를 찾아내려면 남은 시간은 결코 많지 않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의회와 여론의 검증을 통해 걸러진 옐런의 사례를 따를지, 끊이지 않는 인사 잡음을 반복할지는 청와대의 의지에 달렸다.

이정선 국제부 차장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