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본더만, 기업회생 전문가로 월가 입성…블랙먼데이 때 투자 대박
지난해 1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호화로운 파티가 열렸다. 비틀스의 전 멤버 폴 매카트니와 영화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축하 무대에 올랐다. 파티에 초대된 1020명에게는 각각 1000달러어치의 선물이 제공됐다. 운용자금 500억달러(약 54조원)의 세계 최대 사모펀드(PEF)인 텍사스퍼시픽그룹(TPG) 창업자 데이비드 본더만의 칠순(70세)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미국 금융당국이 PEF에 대한 세금을 수익의 15%까지 걷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몸을 사리던 터라 다른 업계 관계자들은 비난을 쏟아냈다.

본더만이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을 밀어붙이는 단적인 예다. 그는 경쟁업체인 KKR과 블랙스톤이 전문경영인을 따로 두거나 주식회사로 전환하는 동안 거의 혼자서 TPG를 이끌며 카리스마를 과시하고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독선적으로 느껴지는 본더만의 리더십은 일흔을 넘긴 나이까지 TPG를 경영하며 세계 최대 PEF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법률에 밝고 아랍어도 능통

본더만은 월스트리트의 다른 금융인들과 달리 변호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워싱턴대를 거쳐 1966년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로스쿨에서 공부하는 동안 그는 당시 학생들 사이에 별로 인기가 없던 이슬람법을 공부했다. 이집트 카이로 등 현지에서 공부하며 원어민에 가까운 아랍어 실력을 키웠다. 20여년 뒤 TPG를 창업했을 때 PEF의 주요 자금줄인 ‘오일머니’를 유치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본더만은 로스쿨을 졸업한 뒤 로펌에서 기업회생 전문 변호사로 일했다. 파산신청을 한 기업을 정상화시킨 뒤 다른 주인에게 매각하는 실무 작업을 담당했다. 요즘 PEF들에 일반화된 수익 창출 방법을 변호사로 있는 동안 익힌 셈이다.

1987년 뉴욕증시가 대폭락한 블랙먼데이는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줬다. 자금시장 경색으로 수많은 금융회사와 기업들이 유동성 위기에 빠지며 나앉았다. 당시 본더만은 몸담고 있던 키스톤PEF에서 파산한 아메리칸저축은행을 매입해 정상화시킨 뒤 매각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이때 키운 자신감과 정상화 과정에서 받은 성공 보수는 1992년 제임스 콜터와 함께 TPG를 창업하는 기반이 됐다. 1960년생인 콜터는 본더만보다 스무 살 가까이 어리다.

주로 샌프란시스코 해변의 TPG 본사에서 경영관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제트기로 세계를 누비며 투자금을 끌어모으고 투자 방향을 정하는 것은 본더만의 몫이다. 콜터는 “아마 내가 본더만보다 먼저 은퇴하게 될 것”이라며 본더만의 정력적인 활동을 치켜세웠다.

○제일은행 매각으로도 큰 수익

본더만은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아시아 외환위기 과정에서 쓰러진 한국 제일은행을 매입해 영국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에 매각한 주역이기 때문이다. 당시 제일은행을 매입했던 뉴브리지캐피털은 TPG의 아시아 자회사다. ‘TPG아시아펀드’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한국이 달러 부족에 허덕이고 있을 때 헐값인 4500억원에 제일은행을 쓸어담았던 본더만은 이를 SC에 재매각하며 1조1511억여원의 차익을 거뒀다. 한국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명맥을 유지하던 은행을 통해 외국자본이 거액의 투자이익을 챙기면서 ‘먹튀’ 논란이 불거졌다.

이처럼 본더만은 저평가된 금융사 주식을 사들여 고수익을 올리는 데 특기를 발휘하고 있다. 2004년 중국 선전개발은행을 1억5000만달러에 인수했던 TPG는 2010년 핑안보험에 지분을 팔아 17억달러의 차익을 거뒀다. 투자금 대비 11.3배의 수익이다.

오랫동안 투자업계에 몸담았지만 본더만은 자신의 투자철학을 공개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 하지만 지인들은 세계 어디라도 달려가 철저한 현장답사를 하는 성실함과 수십년간 갈고닦은 통찰력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평가한다. 마크 라스리 애비뉴캐피털 대표는 “본더만은 거리에서 습득한 명철과 책에서 습득한 지식이 가장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옛날방식’ 고집이 초래한 실패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요 금융회사들이 줄줄이 나앉자 본더만은 ‘새로운 기회’라고 생각했다. 미국 정부가 금융사들의 파산을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벼랑 끝에 몰린 금융사들을 인수해 정상화될 때까지 버티면 아메리칸저축은행이나 제일은행처럼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을 했다.

본더만은 그간의 투자 성공사례를 앞세워 한국의 국민연금 등 세계 기관투자가들로부터 투자자금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금융위기 이후 대부분의 PEF들이 투자금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세계 최대 PEF에 등극한 것은 그 덕분이다. TPG는 2011년까지 5년간 506억달러를 끌어모아 골드만삭스PIA(472억달러), 칼라일그룹(405억달러) 등을 제쳤다.

하지만 최근 무리한 투자로 위기를 맞았다. 2006년 론칭한 ‘TPG5 펀드’가 올해 6월 말까지 수익을 거의 내지 못하고 있어서다. 2008년 188억달러의 자금으로 운용을 시작한 ‘TPG6 펀드’는 2%의 수익률을 올렸지만 벤치마크인 S&P500지수의 상승률(3%)을 밑돌고 있다.

미국 투자운용사 워싱턴뮤추얼은 이같이 낮은 수익률의 원인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TPG는 2008년 초 70억달러 이상을 투자해 워싱턴뮤추얼을 사들였지만 미국 정부는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대신 회사를 JP모건에 헐값으로 팔아버렸다.

TPG는 이 투자에서만 10억달러 이상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본더만은 후임을 정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회사는 어느 때보다 위기에 처해 있다”며 “본더만이 그의 카리스마를 어떻게 발휘해 문제를 해결할지 관심”이라고 분석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