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내년에 시행될 세법개정안을 내놓았다. 세율 인상이나 세목 신설 없이 비과세·감면 축소로 세수를 확보해 창조경제, 고용률 70% 등 국정과제를 뒷받침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는 게 기재부 설명이다. 특히 사각지대였던 종교인과 10억원 이상 부농 소득에 대해서도 과세하고 자영업자의 세금 부담도 늘려 과세기반을 확충한다는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도 세금을 성실하게 많이 내는 중산층 이상 소득계층과 대기업에 더 내라는 세제개편이 되고 말았다. 기재부는 소득공제가 고소득자에게 유리해 세액공제로 전환하겠다는 것이지만, 이렇게 되면 연봉 4000만원인 봉급생활자도 소득세가 늘어나 전체 근로소득자의 28%가 세금을 더 내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근로자의 36.1%(2011년)가 면세자이고, 총근로소득의 37%에만 세금이 부과되는 상황이다. 세금 내는 국민과 세금으로 먹고사는 국민이 나뉠 판이다. 봉급생활자와 중산층을 봉으로 여긴다는 비판이 나와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대기업에도 사실상 증세다. R&D와 설비투자, 환경보전시설, 에너지 절약시설 투자세액 등 각종 공제가 축소된 결과다. 기재부는 특히 일감몰아주기 증여세가 문제가 많다고 인정하면서도 중소기업 아닌 대기업은 이 엉터리 세금을 계속 내도록 했다. 이런 식의 세금은 다만 특정 납세자 그룹에 대한 징벌일 뿐이다. 주요 국가마다 법인세를 내리는데 한국 대기업만 세금을 더 내고 있다. 열심히 돈 벌어 세금 많이 내는 기업더러 더 내라는 압박이다. 지금 세무조사조차 그런 상황이라는 지적도 많다.

물론 복지수요는 늘어났고 세수는 부족하다. 올 세금이 목표치보다 20조원이나 덜 걷힐 판이다. 그렇지만 보편적 복지의 재원은 보편적 납세로 거두는 것이 맞다. 유럽의 고비용 고복지 국가들이 다 그렇다. 기재부는 2017년까지의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에서 소득세와 소비세 비중은 올리고, 법인세와 재산세 비중은 성장친화적으로 조정하겠다고 했다. 더욱이 대통령은 하반기부터 경제살리기에 매진하겠다며 국정 운영의 대전환을 거듭 강조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번 세제개편에는 이런 방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철학은 실종되고 행정편의주의만 남았다. 그나마 세법개정안이 국회에 넘어가면 또 어떤 지경으로 갈가리 찢어질지 그것도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