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국세청 다시 태어나려면
국세청은 1966년 재무부 사세국(司稅局)에서 떨어져 나와 지금의 청(廳)단위 독립조직으로 출범했다. 본격적인 경제개발을 앞두고 늘어나는 재정수요를 충당하려면 강력한 세입기반이 필요하다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그는 새로 출범하는 국세청에 그해 700억원의 세입목표를 제시했고 국세청은 그 기대를 보란 듯이 충족시켰다. 박 전 대통령은 2년 뒤 대구지방국세청 등 4개 세무서를 신설하고 세무공무원교육원을 발족시키는 것으로 화답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라난 박근혜 대통령은 국세청에 대해 남다른 신뢰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망으로 바뀐 대통령의 신뢰

2006년 정부가 추진했던 4대 사회보험료(건강, 국민연금, 고용, 산재) 통합징수 문제에서도 그는 국세청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4대 보험의 부과·징수 기능을 일원화해 전담 조직을 국세청 산하에 신설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인력감축 가능성을 우려한 각 공단의 조직적인 반발에 부딪혀 폐기됐다. 이 법안이 다시 수면 위로 등장한 것은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였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은 통합징수 주체가 국세청에서 건강보험관리공단으로 바뀌었다는 것. 당시 박근혜 의원은 2008년 10월 보건복지가족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세청에 대한 지지를 전면적으로 표명했다.

“건강보험공단으로의 통합은 ‘고지서 통합’에 불과할 뿐입니다. 소득 파악 시스템과 정보인프라를 제대로 구축하고 사회보험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세청이 4대 보험 통합징수를 맡아야 합니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생각은 끝내 관철되지 않았지만 당시 국세청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관가에도 화제가 됐었다. 새 정부 초대 국세청장을 내부에서 발탁한 것도 대통령에게 내재화돼 있는 ‘신뢰 프로세스’의 흐름으로 볼 수 있다.

그랬던 박 대통령에게 최근 불거진 국세청 전·현직 고위층과 CJ그룹 간 ‘스캔들’은 적지 않은 충격을 가져다줬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집권 5년간 공약 이행을 위해 필요한 총 135조원의 재원 중에 국세청에 27조원을 ‘할당’한 터다. 향후 지하경제 양성화가 제대로 힘을 받을 수 있을지,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기관 영문명 왜 바꿨나

5일 휴가에서 복귀하는 박 대통령은 국세청에 강도 높은 개혁을 촉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청와대는 내부 고발 활성화와 외부 감시 확대를 위한 방안들을 검토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하지만 하드웨어적 대책 못지않게 내부 조직문화를 바꾸는 소프트웨어 개혁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가 많다. 우선 국세청 직원들은 1999년 기관 영문명을 기존 ‘National Tax Administration’에서 ‘National Tax Service’로 바꾼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납세자들을 지원하는 서비스 조직으로 탈바꿈하겠다는 선언이었다. 미국 국세청의 영문명도 ‘Internal Revenue Service’로 돼 있다. 하지만 현재 국세청 내부에 자신이 서비스행정에 종사하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2006년 봄. 국세청의 한 간부가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선진 과세행정을 위해 지난 10년간 과세자료 전산화율을 35%에서 세계 최고수준인 80%로 높였다”는 내용의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든 만큼 보다 투명하고 효과적인 징수 기반이 마련됐다는 자평도 곁들였다. 그 간부는 지난 3일 구속 수감된 전군표 전 국세청장이었다.

조일훈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