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동네슈퍼 딸 대처가 남긴 자유시장 정신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87년의 혁명적 삶을 마감했다.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불굴의 지도자였지만 흐르는 세월을 이겨내진 못했다. 총리 집권 11년(1979~1990년)간 불치병 환자였던 노(老)제국을 다시금 일류국가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정적들도 부인하지 못하는 업적이다. 만성파업과 고실업, 비대한 공기업 등 이른바 영국병을 치유한 인물이다. 대처의 정치철학, 즉 대처리즘은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함께 경제적 자유, 자기책임, 작은 정부, 경쟁과 인센티브, 법치주의 등으로 요약된다.

물론 그는 개인적 단점도 많았다. 지나치게 전투적이고 멈출 줄 몰랐다는 것은 그의 공식 전기작가인 찰스 무어의 평이다. 결국 자신이 속한 보수당에 의해 실각당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대처의 공(功)은 과(過)를 덮고도 남기에 충분하다.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총리조차 대처 키드라고 불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대처의 진면목은 바로 자유시장에 대한 일관된 신념에 있었다. 식료품집 딸로 태어났으니 요즘 말로 동네슈퍼집 딸이다. 부친은 배움이 짧았지만 스스로 가게를 일구고 땀흘려 일하면서 항상 ‘사회나 국가에 기대지 말라’는 교훈을 심어줬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진짜 얼굴이요, 대처리즘의 본질이다.

1970년대 영국이 영국병을 앓았듯이 오늘날 한국이 직면한 현실은 ‘한국병’이라 불러도 결코 과하지 않다. 법치 위에 떼법이 있고, 공익을 가장한 이익집단이 판치며, 개인의 책임을 국가·사회 탓으로 돌리는 것이 당연시된다. 자유로운 시장에서 풀어야 할 사안까지 모두 정치판으로 끌고들어가는 ‘경제의 정치화’도 심각하다. 나라 전체가 반(反)시장, 반자유의 탁류에 휩쓸려가지만 내부로부터 아무런 진지한 경고조차 없는 상황이다.

대처에 대한 칭송은 넘쳐나는데 정작 무엇을 배울지 모르고 있는 한국 사회다. 청와대 참모들이 대처연구에 몰두한다지만 유감스럽게도 박근혜정부의 국정방향은 대처와는 거리가 멀다.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 같은 모순된 아젠다가 수두룩하다. 대처를 공부하면서 한국병의 불편한 진실을 정면돌파할 때다. 그때 ‘한국의 대처’도 가능할 것이다.